한국은 ‘유럽식에서 미국식으로’ 요동
TV 지배력 급강하, 미래는 OTT?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오는 2월 6일(현지시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이탈리아 축구의 성지인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열립니다. 8시간의 시차를 더하면 한국시간으로는 7일 새벽 4시 전후가 될 듯합니다. AC 밀란과 인테르 밀란의 홈구장으로 알려진 산시로 스타디움은 올림픽 후 100년 역사를 뒤로 한 채 철거될 예정이라고 하니 한층 더 ‘역사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번 동계올림픽은 대통령이 지적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영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상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 3사가 중계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밀라노 올림픽은 방송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인 JTBC가, 온라인은 네이버(치지직 포함)가 맡습니다.
#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는 독점중계권 확보를 둘러싼 다툼이 치열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자유경쟁이 원칙인 ‘미국식’과 지역별 콘소시엄을 구성하는 ‘유럽식’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올림픽은 NBC 방송사가 오랫동안 독점권을 확보해왔고, 올해 북중미 월드컵은 폭스스포츠가 담당합니다.
유럽은 2009년 유럽정부가 ‘프리 투 에어’(Free-to-air, 무료시청) 콘텐츠를 지정한 후 56개국 73개 방송단체로 구성된 유럽방송연맹(EBU)이 올림픽 및 월드컵 중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료채널인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스가 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했지만 2차 협상을 통해 이번 밀라노 올림픽도 EBU가 중계를 맡습니다. 와[和] 문화의 일본은 1984년 스포츠 중계방송 협력기구로 ‘재팬 컨소시엄’을 구성한 이후 올림픽, FIFA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행사의 방송권을 공동으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 한국은 어떨까요? 이번 JTBC 중계가 말해주듯 요동쳐 왔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는 중계권 협상에 공동으로 임하고,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해 1976년부터 합동방송단을 운영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합동방송단은 ‘코리아풀’로 이름을 변경했죠. 특히 2006년 지상파 3사 사장단은 ‘코리아풀’을 올림픽과 월드컵 단일창구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구속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붕괴와 봉합을 반복했습니다. 사장단 합의에 앞서 KBS(1996년 AFC 아시안컵 중계권), MBC(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4년치 메이저리그 중계권), SBS(1999년 세계청소년 축구 중계권)가 차례로 독자 행보를 보였는데 이런 갈등은 2006년 폭발했습니다. SBS가 자회사 SBS인터내셔널을 내세워 두 차례 월드컵(2010, 2014년), 올림픽(2010~2024년) 중계권을 단독으로 확보했습니다. 실제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그해 남아공 월드컵은 SBS가 단독으로 중계했습니다.
# 갈등이 심해지고, 보편적 시청 논쟁과 국부유출 논란이 일자 2011년 7월 7일. 지상파 방송 3사는 ‘스포츠 중계방송 발전협의회’(Korean Sports. 이하 KS)를 구성했습니다. KS는 중계권 공동확보, 순차편성 및 합동방송을 실시하고, 합의를 깨는 방송사는 300억 원의 위약금을 내야하는 강력한 내부규제안도 마련했습니다. 이후 올림픽과 월드컵은 KBS와 MBC가 SBS로부터 서브 라이센스를 구입해 공동으로 중계했습니다.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말입니다.

# 그런데 이 사이 지각변동이 발생했습니다. 2019년 6월 JTBC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부터 4차례 동하계 올림픽의 한국 중계권을 확보했습니다. 이어 2024년 10월에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과 2030년 월드컵(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의 중계권도 잡았습니다.
엄청난 액수(추정액 총 5억 달러)를 투자한 JTBC는 방송 3사 중 한 곳에 중계권을 재판매하기 위해 공개입찰에 나섰지만, 방송 3사는 입찰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며 반발했습니다. 2025년 5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지만 방송 3사는 위약금 300억 원이라는 KS규정과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JTBC는 온라인 중계권을 높은 금액(추정액 1억 달러)에 네이버에 판매한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 JTBC와 네이버의 중계는 이전과 어떻게 다를까요? 일단 수용자 입장에서는 캐스터와 해설의 다양성이 사라집니다. 올림픽, 월드컵은 비디오와 현장 오디오가 ‘단일화’돼 있습니다. IOC나 FIFA가 중계권을 확보한 방송사들과 협의해 ‘하나’로 제작하죠(올림픽의 경우 OBS). 여기에 캐스터와 해설자(오디오), 그리고 관련 데이터를 동원해 방송사들이 자신들만의 중계를 만듭니다.
방송 3사가 모두 중계를 할 때는 이를 선택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000 때문에 000 TV를 본다’식으로 캐스터와 해설자의 파워가 존재했습니다. 이번 밀라노 동계올림픽은 이게 없습니다. 네이버의 경우, 주요 경기는 JTBC의 중계를 받아서 전송하고, JTBC가 중계하지 않는, 즉 관심도가 떨어지는 경기는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캐스터와 해설자를 붙인다고 합니다. 2010년 SBS의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남아공 월드컵 단독 중계 때와 같은 겁니다.

#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여러 가지 이유로 지상파 방송 3사 중 하나가 중계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먼저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KS에 실무자로 참여한 바 있는 A씨는 "30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이 있고, 방송광고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어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 이미 온라인 광고가 방송 광고를 뛰어넘었고 지상파 방송의 적자도 누적되고 있다. JTBC가 원하는 액수에 방송 3사가 중계권을 사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두 번째는 ‘너희(JTBC)가 독점하겠다고 비싸게 사놓고, 이제 와서 감당이 안 되니까 비싸게 사달라고?’식의 불만이 여전합니다. 방송 3사는 중계를 못하는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에 대해 뉴스 비중도 줄이고, 관련 특집프로그램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올림픽 ‘붐업’이 안 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스포츠 콘텐츠의 소비패턴 변화입니다. 즐길 거리가 많은 세상에 TV생중계보다는 유튜브 하이라이트나 숏폼 콘텐츠(릴스 숏츠)로 스포츠 이벤트를 소비하는 것이죠. 이는 영화 및 극장산업이 최근 크게 위축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 물론 동계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비해 흥행 파괴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오는 6월 북중미 월드컵 때는 JTBC나 네이버 외에 지상파 방송이 중계에 합류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각에서는 그나마 MBC의 자금사정이 낫다고도 합니다. 또 세월이 흘러 2032년 이후에는 KS시스템이 부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스포츠 중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간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지상파나 종편이 아닌,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OTT 서비스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생중계를 보는 것이 ‘뉴 노멀’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미국의 경우, 유튜브, 애플, 넷플릭스 등이 주요 프로스포츠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케이블TV 선을 끊는다는 ’코드 커팅(Cord-Cutting)'이 한창일 정도로 TV의 지배력은 갈수록 떨어집니다. 한국도 쿠팡플레이나 티빙이 스포츠 중계권을 늘려가고 있죠. 방송법 제2조가 ‘보편적 시청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모호한 대목이 있고, 또 이미 케이블 TV가 이를 깼으니 OTT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인생에 영원한 건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시대입니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