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청탁 인지' 전후로 유·무죄 판단
"싸가지 시스터스"…'선수들' 대화 무죄 근거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명품 가방 수수 관련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건희 여사에게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한 법원은 2개의 샤넬 가방을 수수 시점과 청탁 인지 여부에 따라 유·무죄를 엄격히 갈랐다. 김 여사의 핵심 의혹으로 꼽혔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 무죄 판단에는 주가조작 선수들에게 '경계 대상'으로 취급받았다는 정황도 작용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우인성 부장판사)는 김 여사가 2022년 4월 통일교 측에서 받은 샤넬 가방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당선 직후라는 시점적 특성상 '당선 축하' 등의 의례적 인사가 오갔을 뿐, 구체적인 청탁을 인지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여사는 윤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 약 한 달 뒤인 2022년 4월 초 통일교 측에서 802만 원 상당의 샤넬 가방을 전달받았다. 이 가방은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같은 해 4월 7일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에게 먼저 전달받은 뒤 김 여사 측에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전 씨는 이후 윤 전 본부장에게 "여사님이 감사 인사를 전했고, 가방도 아주 좋아하셨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김 여사와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3월 30일 '대선을 도와줘서 고맙다',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는 취지로 통화한 사실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이 통화와 메시지에 대해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하고, 그 대화 내용 가운데 청탁으로 볼 만한 부분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UN 제5사무국 한국 유치 문제 등 구체적인 청탁으로 볼 만한 사안은 샤넬 가방 등이 전달된 이후인 2022년 4월 중순경부터 윤 전 본부장이 전성배 씨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공여자 측이 피고인과 관계 형성 초기 단계에서 향후 정부 지원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는 있으나, 피고인은 2022년 4월경 가방 등이 전달될 당시 그것이 어떠한 청탁과 관련된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같은 해 4월 23일 이후 전성배 씨에게 문자 등을 전달받은 뒤에야 청탁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탁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알선의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약 3개월 뒤인 2022년 7월 초 김 여사가 받은 1271만 원 상당의 샤넬 가방에는 유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텔레그램 등을 통해 UN 사무국 유치 등 구체적인 이권 청탁이 전달됐고, 김 여사가 "작업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2022년 4월 하순 이후 전 씨에게 통일교 측이 추진하던 UN 제5사무국 한국 유치와 이를 위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 등을 전달받았고, 이에 대해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보였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김 여사가 가방을 전달 받은 직후인 같은 해 7월 15일 직접 윤 전 본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한 대목이 나온다. 김 여사는 "여러 가지로 신경 써주셔서 감사드린다"라며 "저희가 여러가지로 많이 작업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 여러 가지"라고 했다. 윤 전 본부장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이에 "피고인은 통일교 측의 청탁 내용이 정부 차원의 경제적 지원과 관련돼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적 지원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점은 피고인에게 청탁의 실현을 위해 알선할 의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러한 인식과 의사 하에 샤넬 가방 등이 교부된 이상, 해당 금품은 알선의 명목으로 수수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알선수재죄 성립 요건에 관한 대법원 판례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에서 "알선할 사항이 공무원의 직무에 속하고, 금품 수수의 명목이 그 알선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며 "단지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알선수재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샤넬 가방이 전달된 시점에 김 여사가 이를 구체적인 청탁의 대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된 것이다.
사실상 샤넬 가방 수수의 유무죄를 가른 잣대는 '수수 시점'과 수시 당시 청탁 인식 여부였다. 법원은 같은 공여자가 건넨 가방일지라도 구체적 메시지가 오가기 전인 4월은 '의례적 선물'로, 인식 후인 7월은 '청탁 대가'로 분리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통령 배우자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알선수재죄의 성립 범위를 더욱 폭넓게 해석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적극적으로 정치권 로비 활동을 벌여온 통일교 측이 역대 대통령 배우자들과 비교되지 않는 주목도를 가진 김 여사에게 건넨 수백만원의 고가 명품백이 목적 없는 단순한 선물일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이외에도 재판부는 김 여사가 수수한 금품으로 6220만 원 상당의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 1개가 포함된다고 봤다. 김 여사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 수수 혐의는 줄곧 부인해왔지만, 재판부는 건진법사와 김 여사의 오래된 인연 등을 살폈을 때 "영부인에게 전달될 물건을 가로채는 대담한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 '공모'는 무죄지만 '방조'는 의심... 법원 "시세조종 거래 알았을 것"
김 여사의 핵심 혐의로 꼽혔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계좌가 시세조종에 동원된 정황은 인정하면서도, 주가조작 세력과의 '공동정범'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판단에는 주가조작 선수 간의 문자메시지가 결정적 근거가 됐다. 판결문에는 주가조작 '선수'인 민 모 씨와 김 모씨는 2011년 4월경 김 여사를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 대목이 나온다.
민 씨가 "매수 대기조는 대기만 시켜두냐"라고 묻자, 김 씨는 "피아가 분명한 팀은 조금씩 사야지. 김건희 싸가지 시스터스 같은 선수들은 말고"라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피고인이 주가조작 세력과 의사를 공유하는 '원팀'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세력 내에서 배제되거나 경계 대상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민 씨가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거래 수익 정산에 대해 항의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자, 김 씨는 "듣던대로 XX이구만 ㅎㅎ"이라고 김 여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당시 이들에게는 피고인과 함께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대한 시세조종행위를 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공모관계에 있는 내부자가 아니라 그 공모관계 밖에 존재하는 외부자(거래상대방)로 취급됐다"고 했다. 이어 "이는 피고인이 시세조종 세력과 공동정범 관계에 있지 아니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재판부는 "시세조종 거래임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심은 든다"며 김 여사의 주가조작 범행 인식에 따른 '방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다만 설령 혐의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법적 처벌 대상은 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다만 법원 판단을 따르더라도 김 여사가 주가조작 범죄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한 상태에서 필요한 자금을 제공한 셈이고 막대한 수익도 얻었기 때문에 공범으로 적극 해석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 여사는 지난 2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알선수재 혐의만 유죄로 선고하고, 나머지 두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김건희 특검이 구형한 15년에 한참 못 미치는 양형이다. 김 여사는 "재판부의 엄중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고 했다. 검찰은 "법원의 판단은 법리적으로는 물론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서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측 모두 항소를 예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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