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지선' 지면 정부에 타격" 위기감 고조

[더팩트ㅣ국회=이태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은 12일 각종 비위 의혹에 연루된 김병기 전 원내대표에 대해 가장 높은 징계 수위인 '제명' 의견을 냈다. 애초 김 의원의 징계 조치 여부에 신중하던 민주당 지도부도 연일 악화하는 여론에 '징계 방향'에 무게를 실으면서, 초유의 '원내대표 출신 의원' 제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이날 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마라톤 회의 끝에 김 의원에 대해 제명 처분을 의결했다. 김 의원이 지난달 30일 원내대표직에서 전격 사퇴한 지 13일 만이다. 한동수 윤리심판원장은 "사안의 중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명 처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직접 회의장을 찾아 소명에 나섰지만,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권고를 피하지 못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쿠팡 오찬' 논란을 시작으로 △대한항공으로부터 고가 호텔 숙박권 찬조 논란 △지역구 병원 가족 특혜 진료 의혹 △보좌진 사적 업무 동원 의혹 △배우자 구의회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의혹 등이 붉어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강선우 무소속 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김경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자로부터 1억 원의 공천 헌금을 수수한 사실을 묵인했다는 의혹에 직면하면서 치명상을 입었고, 결국 윤리심판 절차에 회부됐다. 김 전 원내대표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3000만 원의 공천헌금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징계 사유에 관해 "대부분 보도된 대로 대한항공, 쿠팡 등 이런 것들이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공천 헌금 의혹과 관련해서도 "일부 시효가 완성된 부분이 있고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라면서 "구체적으로 징계 결정문들이 조사 대상자에게 송달된 후에 7일 이내 재심 신청할 수 있는 권리들이 보장돼 있다"라고 부연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현역 의원이 소속 정당으로부터 제명당한 사례는 꽤 있다. 그러나 원내대표 출신 의원이 제명당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아직 최고위원회 보고와 의원총회에서 전체 의원의 동의(2분의 1 이상)를 구하는 절차 등이 남아있지만,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했을 때 제명 가능성이 크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김 의원과 함께 공천 수수 의혹에 연루된 강선우 의원을 제명한 바 있다.
애초 민주당은 김 의원에 대한 조치에 신중 기조를 유지해 왔다. 당 일각에서 정청래 대표가 비상 징계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그때마다 지도부는 거리를 둬 왔다. 기류가 바뀐 시점은 지난 11일이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기자 간담회에서 "(김 전 원내대표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왔던 애당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버티기' 작전을 펴온 김 의원에게 사실상 탈당을 요구한 것으로, 당의 제명 절차 돌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민주당의 기류 변화는 6·3 지방선거 위기론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다가오는 지선은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지는 '허니문 선거'다. 2000년대 들어 정부 출범 1년 6개월 내 치러진 지선에선 모두 여당이 승리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1개월 만에 치러진 지선에서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7곳 광역단체장 선거 중 14곳을 가져왔고, 윤석열 정부 출범 22일 만에 치러진 2022년 지선에선 국민의힘이 12곳을 차지했다.
그러나 당내에서 최근 불거진 '공천 헌금 사태'가 지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민주당이 지선에서 패할 경우,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이 크게 소실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병도 신임 원내대표는 전날 "우리가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하는 비상식적인 세력에게 지선을 패한다면, 내란 세력의 총반격이 시작될 것"이라며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자 민주당이 김 의원에 대해 분명한 징계 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 정치권 인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직전 원내대표를 제명한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민주당으로선 그 만큼 이번 지선 승리가 절박하다는 것이다. 전임 원내대표에 대한 예우보다 선거라는 실리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최고위는 오는 14일 김 전 원내대표 제명안을 보고받은 뒤, 15일 의총을 열고 김 전 원내대표 제명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김 전 원내대표가 윤리심판원 결정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경우 징계 확정 시점은 늦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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