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에 발의 건수 써야" 압박감도
새로운 평가 기준 요구 목소리

국회의원들의 입법 효능이 높아진 것일까, 아니면 졸속 입법이 일상이 된 시대일까. 숫자만 놓고 보면 22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 처럼 보인다. 발의 건수로 성과를 평가하는 구조 속에서 국회는 '숫자'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법안 발의 건수가 의정활동의 성과로 평가되는 구조 속에서 입법은 '숙의의 과정'이 아닌 '숫자의 경쟁'이 됐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현장과 입법 지원 인력에게 쌓이고 있다. <더팩트>는 '얼마나 많이 발의했는가'라는 착시를 걷어내고, 숫자에 쫓기는 입법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김수민·서다빈 기자] 실제로 법안 발의를 책임지는 국회의원 보좌진들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발의 건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입법의 양이 성과로 평가되는 이상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충분한 검토보다 '속도'와 '선점'이 우선되는 구조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도 여럿이다.
보좌진들은 단순한 수행 비서 역할을 넘어 입법을 책임지는 '실무 엔진'과 같다. 의원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면, 그 결단이 실제 '법률'이라는 결과물로 완성될 수 있도록 과정 전반을 담당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를 정교하게 만드는 업무라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그들을 괴롭게 만드는 게 바로 '과잉 입법'이다.
입법 성과가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에 반영되다 보니 의원들은 압박감을 느끼고, 이는 고스란히 보좌진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야당 소속 한 비서관은 <더팩트>에 "의원들이 보좌진을 쪼고, 법률 발의로 업무를 평가하기 때문에 보좌진도 더 경쟁적으로 발의하는 것 같다"며 "쓸데없이 비슷한 법안을 내거나 똑같은 법안을 문구·기준만 바꿔서 내는 건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라고 지적했다.

여당 소속 한 비서관은 "보좌진은 아무래도 입법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 어렵다. 성과를 내세우기 위해 내용을 조금이라도 수정하는 개정법을 많이 내게 되는 게 사실이다"라며 "다른 의원실로 이직할 때 법안 발의 건수를 자기소개서에 써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보좌진들은 입법 과정을 위한 시간과 인력은 한정돼 있다 보니 정작 정말 필요한 법안들이 밀려나고 있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여당 소속 한 보좌진은 "발의 법안이 과도하게 쏟아지다 보니 사회적 파급력이 크고, 현장에서 절실한 법안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법안이 실제로 필요한지'보다 '언제 발의됐는지' '이슈성이 있는지'에 따라 논의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다른 보좌진도 "깊이감 있게 준비한 법안보다 비교적 단순하거나 상징적인 법안이 먼저 논의돼 법안소위원회에 참여할 때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며 "의원 입법은 10인 이상의 동의만 있으면 사실상 사전 검증 없이 발의할 수 있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과잉 입법과 함께 정말 필요한 법이 밀려나는 현상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새로운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이유다. 범여권 소속 한 보좌관은 "충분한 사전 논의와 검증을 발의의 전제 조건으로 제도화하고, 발의 숫자를 공천 기준으로 삼는 관행도 타파해야 한다"며 "시민사회와 정당이 협력해 입법 활동의 질과 책임성을 정교하게 산술화하는 새로운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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