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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유통] 대형마트 올가미로 지목되는 '유통산업발전법'
홈플러스 가양점, 폐업 마지막 날까지 '의무 휴업' 적용
기업형 슈퍼마켓도 가맹점인데, 유통법 규제 적용 대상


유통산업발전법의 각종 규제가 대형마트의 실적은 물론 업황 자체를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진은 홈플러스 가양점 내 장을 보는 고객의 모습. /손원태 기자
유통산업발전법의 각종 규제가 대형마트의 실적은 물론 업황 자체를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진은 홈플러스 가양점 내 장을 보는 고객의 모습. /손원태 기자

[더팩트 | 손원태 기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경영 악화로 오는 28일 서울 가양점의 폐점을 맞게 됐다. 가양점은 지난 2000년 10월 개장해 25년간 인근 주민들의 일상을 함께 했던 곳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대형마트를 둘러싼 각종 규제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쿠팡과 컬리 등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공룡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실적 부진을 맞닥뜨렸다.

홈플러스 가양점이 고지한 마지막 영업 일자는 28일이지만 실질적 영업은 27일까지다. 28일이 대형마트 2주·4주 일요일 의무 휴업일에 들어간 탓이다. 홈플러스 가양점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형마트 규제를 피하지 못했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는 올해 3분기 일제히 역성장을 나타냈다. 이마트는 3분기(7~9월) 매출이 2조9707억원으로, 전년 동 기간(3조750억원) 대비 3.4% 감소했다. 이 기간 롯데마트는 7.5% 하락한 1조4654억원을, 홈플러스는 19.7% 급감한 1조3693억원을 기록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의 각종 규제가 대형마트의 실적은 물론 업황 자체를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모습. /이상빈 기자
유통산업발전법의 각종 규제가 대형마트의 실적은 물론 업황 자체를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모습. /이상빈 기자

◆ 대형마트 키우던 유통산업발전법, 올가미로 바뀌게 된 이유

대형마트 업계의 3분기 실적 부진 주요인으로는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과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이 꼽힌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월 장기간 이어진 내수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전 국민 대상으로 소비쿠폰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 소비쿠폰 사용처에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은 도외시됐다.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매출 급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오랫동안 대형마트의 발목을 잡은 유통법도 매출 하락 폭을 크게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통법은 지난 1997년 제정된 법으로, 당시 우리나라 유통 시장이 전면 개방하면서 등장했다. 월마트와 까르푸 등 외국계 유통기업들이 국내로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통법은 국내 유통산업의 자생력과 경쟁력 강화를 골자로 움직였다. 정부는 이 법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선진화된 바코드와 물류 시스템을 완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예컨대 점원이 일일이 제품마다 가격표를 붙여 수기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닌, 바코드를 컴퓨터와 연계해 빠르게 계산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또한 제조사와 대형마트 사이에서 물류센터를 짓도록 해 유통 단계를 간소화했다. 이를 통해 대형마트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유통법은 2010년대 들어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일변도로 강화되기 시작했다. 대형마트 시장 규모가 37조원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정부가 전통시장과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돌연 법안을 튼 것이다. 2010년 유통법 규제 대상에 SSM이 포함됐고, 대형마트와 SSM 모두 정부의 출점 제한 규제를 받게 됐다. 2012년에는 현재의 유통법인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제한 등의 규제도 생겨났다.

구체적으로 대형마트는 유통법에 따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의무 휴무 △매월 2회 의무휴업일 지정 △휴무·휴업 기간 온라인 배송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전통시장 1㎞ 내 출점 제한) 등을 적용받는다. 유통법은 4년 간격으로 특정 규제의 효력이 자동으로 상실하는 일몰제로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일몰 예정인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재차 통과됐다. 이에 대형마트는 오는 2029년 11월까지 4년 더 유통법 규제 대상에 올랐다.

대형마트가 10년 넘게 규제 대상에 오르면서 유통업계의 판도는 뒤집혔다. 우선 대형마트가 영업에 지장을 받으면서 이커머스 업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으로 쿠팡은 대형마트 규제가 시작된 2013년 연매출 4300억원에서 2024년 41조원으로, 10년 만에 100배 가까이 덩치를 키웠다. 컬리 역시 대형마트의 영업 휴무 시간을 틈탄 샛별배송(새벽배송)으로 시장을 빠르게 선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아니라 유통산업후퇴법으로밖에 볼 수 없다"라며 "이 법은 온라인 이커머스의 가속화를 더욱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고,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전락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이대로 대형마트가 주저앉게 되면 온라인을 접목하지 못하는 오프라인 소상공인들도 덩달아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의 각종 규제가 대형마트의 실적은 물론 업황 자체를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진은 쿠팡의 새벽배송 모습. /쿠팡
유통산업발전법의 각종 규제가 대형마트의 실적은 물론 업황 자체를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진은 쿠팡의 새벽배송 모습. /쿠팡

◆ 기업형 슈퍼마켓도 가맹점인데, '대형마트 vs 전통시장' 구도 여전

업계와 전문가들은 유통 시장을 이커머스가 빠르게 흡수하는 상황인데도 유통법이 10여 년 전의 논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유통법이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간의 대결 구도로 흐르는 점은 잘못된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도 상당수 매장이 가맹점으로 운영되고 있어 역차별 논란도 제기된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 'GS더프레시'는 올해 10월 기준 전국 586개 점포를 뒀는데, 그중 80%가 넘는 477개 점포가 가맹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점포에서의 가맹점주들은 자영업자, 소상공인임에도 영업시간이나 의무휴업 등과 같은 유통법 규제를 똑같이 적용받는다. 정부가 지난 7월 내수 진작을 위해 전 국민 대상으로 발급한 소비쿠폰 사용처에서도 이들은 제외됐다.

기업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가맹점주는 "우리는 대기업이 아닌, 소상공인이다"라며 "이커머스의 유통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선 지점에서 개인 슈퍼마켓은 이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구조다. 아침거리를 구매하기 위해 방문한 고객에도 영업하지 못하는 '웃픈'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유통법은 대형마트에만 월 2회씩 강제적으로 쉬도록 규제를 10년 넘게 적용하고 있다. 이에 대형마트는 유통산업 성장을 위해 마련된 유통법이 오히려 각종 규제로 작용하며, 자신들을 시장에서 도태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대형마트가 인근 전통시장의 수익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뚜렷한 인과관계도 나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1월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1.5%만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에 전통시장을 방문한다고 답했다. 이어 응답자의 46.1%는 슈퍼마켓이나 식자재마트를, 17.1%는 대형마트 영업일 재방문, 15.1%는 온라인 거래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율 경쟁 구도에서 대형마트든 전통시장이든 이커머스든 간에 자유로운 경쟁 체제가 마련돼야 하는데, 유통산업발전법은 일방적으로 대형마트만 옥죄고 있다"며 "이 법안이 등장하면서 지난 10여년간 전통시장의 성과나 발전이 있었다는 객관적 데이터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마트를 의무적으로 휴업하게 한다고 해서 전통시장이 살아나는 구조도 아니다"며 "근본적으로 이커머스만 독점체제로 굳혀지게 됐다.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닌 전통시장 스스로 경쟁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tellm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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