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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석] 국보가 된 예천 개심사지, 천 년의 기록과 오늘의 책임
지정만으로 끝나지 않는 역사, 보존과 관리가 필요하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 석탑. /예천군
예천 개심사지 오층 석탑. /예천군

[더팩트ㅣ예천=김성권 기자] 경북예천군 개심사지 오층석탑이 마침내 국보가 됐다. '지정'이라는 행정 용어 뒤에 숨기엔 이 변화가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천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돌탑 하나가, 이제 국가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는 단순한 문화재 승격이 아니라, 예천이라는 지역이 지닌 역사적 깊이가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았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 석탑의 특별함은 숫자로도 설명된다. 고려 현종 2년, 1011년이라는 명확한 건립 연대 그리고 190자에 달하는 명문. 고려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다. 그 안에는 광군이 동원된 사실과 지방 사회 조직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닌, 돌에 새긴 기록으로 만나는 고려 초기 사회와 군사제도다. 그래서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유물이기 이전에 말 없는 증언자다.

형태 역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통을 잇는 이층기단 위에 고려적 변화를 절제되게 얹은 구조는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과하지 않지만 분명하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석탑 양식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이보다 명확한 표본도 드물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 석탑 상층 기단 갑석과 면석모습. /예천군
예천 개심사지 오층 석탑 상층 기단 갑석과 면석모습. /예천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석탑이 지닌 '시간에 대한 태도'다. 수차례 발굴조사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부재 교체 없이 건립 당시의 원형을 유지해 왔음이 확인됐다. 이는 우리에게 묻는다. 문화유산을 대하는 오늘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새것처럼 만드는 복원이 아니라, 오래된 그대로를 존중하는 보존이야말로 진짜 가치가 아니냐고 말이다.

국보 승격은 축하로 끝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국보에 걸맞은 보존과 관리, 지속적인 학술 연구 그리고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품격 있는 활용이 뒤따라야 한다. 문화유산은 지정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태도 속에서 살아남는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이제 지역의 문화재가 아니라 국가의 유산이다. 이 돌탑에 새겨진 천 년의 기록이 앞으로도 온전히 읽히도록, 행정과 지역사회 모두가 국보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시간이다. 그것이 이 조용한 돌탑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당부일지도 모른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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