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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 정서윤 대표 "남북 청년 평등해야…체제 증명 도구로 보면 안 돼"
[탈북민 목소리③] 北 청년 역량 발휘 구조 필요
"준비된 통일, 사회적 비용 최소화할 수 있어"


남북 청년 협력의 장을 만들고 있는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관계의 회복과 균형을 남북 청년 교류의 출발점에 놓는다. /이새롬 기자
남북 청년 협력의 장을 만들고 있는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관계의 회복과 균형을 남북 청년 교류의 출발점에 놓는다. /이새롬 기자

☞<상>편에 이어

[더팩트ㅣ성남=정소영 기자] 남북 청년 협력의 장을 만들고 있는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관계의 회복과 균형을 교류의 출발점에 놓는다. 그는 단발성 행사와 형식적 만남으로는 한국 청년과 북한 출신 청년이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는 경험을 증언하는 비대칭적 구조 속에서 관계는 쉽게 일그러지고 편견은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통일 이후 사회를 미리 실험하는 일에 가깝다고 정 대표는 설명한다. 관계의 복원은 탈북민이 한국 사회의 동등한 시민으로 자리 잡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자 남과 북이 언젠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북 청년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문화적 편견을 걷어내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통일의 방향과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정 대표는 제언한다.

<더팩트>는 지난달 14일 경기도의 한 모처에서 정 대표를 만나 유니피벗을 시작한 계기와 통일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정 대표와의 일문일답.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지난달 14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모처에서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지난달 14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모처에서 "한국 사회에서 북한 출신 청년들이 겪는 구조적 비대칭성을 느끼고 시작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새롬 기자

-독서 모임 ‘남북(book)한걸음’을 시작한 계기를 듣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출신 청년들이 겪는 구조적 비대칭성을 느끼고 시작하게 됐다. 탈북민은 한국 사회에서 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열세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청년들이 ‘대등한 친구’나 ‘이웃’으로 만나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관계가 건강해지려면 균형이 필요한데 현실에서는 그 균형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남북 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해 봤지만, 짧은 행사 중심의 만남에서는 깊은 대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강연·토론·봉사활동·자전거 행사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했지만, 탈북민이 참여하면 간혹 전시품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청년들이 호기심 어린 질문을 쏟아내고, 북한 청년은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하는 방식이었다. 또 잠깐 모였다가 헤어지는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는 서로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남북 청년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대등하게 만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장을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게 됐다. 국어교육과 출신으로서 소통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편견이 존재하는 관계일수록 더 긴 시간과 안정적인 만남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또 한국 청년의 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북한 출신 청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워지고, 말투나 배경이 불필요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대화의 초점이 흐려지기 때문에 균형 있는 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고민 끝에 한 주제 중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 장기적으로 만나며 서로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독서 모임 ‘남북(book)한걸음’이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출신이 먼저 드러나지 않아도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고, 시간이 쌓이면서 진짜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

-유니피벗을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남북 청년 간 소통 사례가 있다면.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남북 청년들이 서로의 집을 방문할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다. 독서모임이나 장기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함께 파티를 하는데, 어느 날 인천에 사는 한국 청년이 북한 청년 등을 모두 초대해 그의 집을 간 적이 있었다. 집을 열어준다는 것은 깊은 신뢰가 형성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에는 내가 직접 우리 집에 독서모임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은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함께 읽던 시기에 일어났다. 유니피벗을 후원해주던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는 모임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온라인 댓글에서 ‘빨갱이다’ ‘종북이다’라는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모임에서 꺼냈을 때 한국 청년들이 ‘그런 사람들은 미친 거다. 그런 말에 상처받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이런 경험들은 남북 청년 간 신뢰가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다.

-남북 청년들간 공존을 위해 당장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는 정책·사회적 장치가 있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북한 출신 청년들이 가진 에너지와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북한 출신 청년들이 과거 한국 사회에서 군 복무를 하고 싶다거나, 북한·통일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다만 실제로 그들이 설 수 있는 자리는 매우 제한적이다. 물론 북한에서 온 사람들 중 본인이 원하면 입대가 가능하도록 법이 바뀐 것은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역량을 살릴 수 있는 통일·대북 분야의 직무 기회는 충분하지 않다. 북한 출신 청년들이 남북을 잇는 교량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증명하는 존재로만 소모되는 프레임이 고착된 것 같다. 이 프레임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 출신 청년의 역량을 공존과 협력의 자원으로 활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존을 위한 정책의 출발점은 북한 출신 청년 즉 탈북민을 단순한 피해자나 체제 증명의 도구로 보지 않고 ‘남북을 연결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하는 태도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 전환 없이는 어떤 제도적 개선도 실질적 효과를 내기 어렵다.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지난달 14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모처에서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지난달 14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모처에서 "통일 논의는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새롬 기자

-국내 청년 세대는 통일의 당위성보다 ‘현실적·생활적 통일’을 더 요구한다는 분석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이해간다. 하지만 나는 통일이 대한민국 전체에 분명한 이익이라고 본다. 내가 북한 출신이기 때문에 통일을 원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오랫동안 고민해 왔지만,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통일은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의제다. 그렇다면 통일을 추진할 때는 ‘과연 국민 전체가 감당할 만한가’, ‘장기적으로 어떤 구조를 설계해야 부담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 여기서 핵심은 통일의 방식이다. 보험에 가입할 때도 ‘무조건 가입하라’가 아니라 어떤 상품을 어떻게 선택해야 가장 이득이 되는지 연구하듯이 통일도 ‘똑똑한 설계’가 필요하다.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통일은 경제·안보·인구 구조 등 여러 분야를 장기적으로 안정시키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며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통일이 미래 세대가 누릴 수 있는 장기적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한 국가적 투자라고 본다. 잘 설계된 통일은 청년들에게 부담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

-통일 논의에서 반드시 빠지지 말아야 하는 요소가 있다면.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전쟁처럼 물리적인 폭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 등 세 가지의 폭력이다. 직접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은 국방이나 제도 영역에서 다룰 수 있겠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문화적 폭력이다. 문화적 폭력은 구조적·직접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화적 폭력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내가 경험한 것도 대부분 문화적 폭력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불렀던 노래를 한국에서는 부를 수 없고, 북한에서 봤던 영화도 모두 불법이다.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내려 해도 신고 대상이고, 북한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북한에서 온 사람의 정체성, 기억, 문화적 자산 전체가 한국에서는 ‘지우는 것’이 전제로 되는 셈이다. 이것 또한 폭력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럼 북한이 좋다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북한을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살아온 경험과 문화적 토대를 전부 지워야만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구조 자체에 있다. 탈북민이 소수이기 때문에 지금은 이 문제가 사회 전체의 갈등으로 확산되지는 않지만, 통일은 남과 북 전체가 하나 되는 과정이다. 그 상황이 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을 무시하거나 ‘너희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은 잘못됐다’고 단정하는 순간, 갈등은 구조적으로 증폭될 수 있다. 따라서 통일 논의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요소는 바로 문화적 폭력을 해소하는 시각이다. 이것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어떤 통일도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형태가 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참 어려운 질문이다. 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동서독 사례를 오래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할 지점이 많다고 느꼈다. 대학생 때 독일에 가 통일 사례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강연자에게 ‘한국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강연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서독은 통일을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은 준비할 기회가 있다. 준비된 통일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 말이 지금까지 내게 하나의 미션처럼 남아 있다. 동서독은 이미 통일을 경험했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도 그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과거의 상처와 갈등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우린 옛날에 싸웠잖아’ 같은 기억을 반복적으로 꺼내다 보면, 정작 ‘앞으로 어떻게 함께 잘 살 것인가’라는 통일의 본질적 질문에 답하지 못하게 된다. 남북 모두 상처를 겪었고 화해의 과정 또한 충분히 진행되지 못했다. 통일 3단계 방안에서 1단계가 화해·협력임에도 우리는 1단계를 제대로 밟지 못한 상태다. 화해 없이 다음 단계로 갈 수는 없다. 한국 사회가 통일을 두려움이 아닌 준비 가능한 미래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upjs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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