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수 LPGA투어 8명, PGA투어 7명 도전장
"다시는 못 올 곳"...최경주도 고개 절레절레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벌써 25년이나 흘렀지만 늘 이맘 때 쯤이면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 2000년 12월 초 PGA투어 Q스쿨 최종전이 열린 미 캘리포니아주 라퀸타의 PGA웨스트에서 만난 최경주와의 대화다. 당시 최경주는 자신의 두번째 PGA투어 풀시드 도전이었고 필자는 모 신문사의 골프 특파원 신분이었다.
6라운드 108번째 홀 1미터 남짓의 퍼팅을 성공시켜 가까스로 풀시드를 확보한 최경주는 "이거 정말 못할 짓이다.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겠다. 정규대회 우승 보다도 더 힘들고 지친다"며 넌덜머리를 냈다. 최경주는 그 ‘살 떨리는(?)’ 퍼팅 덕에 PGA투어 카드를 극적으로 손에 쥐었고, 그 퍼팅이 훗날 정규투어 8승, 시니어투어 2승을 기록하는 업적의 출발점이 됐다. 그 때 만일 최경주가 그 퍼팅을 놓쳤다면 대한민국 골프의 PGA투어 도전사는 과연 어떻게 쓰여졌을까?
이렇듯 Q스쿨, 또는 Q시리즈의 일타일타는 선수로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한 대회의 결과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 커리어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관문’이라 Q스쿨은 감정적으로도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선 "1년에 한번 뿐인 인생 시험"이라 말하기도 한다. 선수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표현들 몇 가지를 보자면, "심장이 하루에 열 번씩 내려 앉는 경기", 나와의 싸움 중 최악의 단계", "평생 가장 무서운 라운드" 등등이다.
또 한시즌이 끝나 Q스쿨의 시간이 돌아왔다. 1년 농사를 잘 지어 투어에서 우승도 하고, 또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쟁력을 보여준 선수들이야 남의 일이겠지만, 모두가 다 그럴 수는 없는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장을 던지는 루키들이나, 아니면 성적 부진으로 다시 Q스쿨에 참가해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선 "가장 두려운 무대이자, 가장 간절한 무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많은 LPGA투어 Q시리즈 최종전은 4일 밤(한국시간) 시작되며 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2차전을 거쳐 오는 11일 밤부터 미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다이 밸리코스에서 최종전을 통해 내년도 시드권자를 선발한다.

#LPGA투어 Q시리즈 최종전(12.4~9 미 앨라배마주 모빌, 매그놀리아 그로브코스)
5라운드 90홀 경기로 진행되는 Q시리즈 최종전에는 8명의 한국선수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가장 관심을 끄는 선수는 국내 장타 1, 2위인 21살 동갑나기 이동은과 방신실. 이동은은 올해 한국여자오픈 챔피언이자 평균 261.1야드로 가장 멀리 치는 선수로 공인 받았으며 상금 6위, 대상포인트 5위 등 고르게 상위권을 장식했다. 장타 2위(258.7야드)인 방신실은 올해 우승 3회, 준우승 2회의 빼어난 성적을 올린 기대주로 상금 4위, 대상포인트 3위를 기록했다.
따라서 둘 다 이번 Q시리즈가 첫 도전이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함께 미국 진출을 준비하던 황유민이 지난 10월 초청선수로 참가한 롯데챔피언십에서 덜컥 우승해 단숨에 LPGA투어 카드를 획득한 것도 이들에게는 큰 자극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던 라이벌이 Q시리즈를 건너 뛰고 꿈의 무대에 입성한 것이 부러움과 함께 자신감을 한껏 불어 넣은 것이다.
지난 2018년 Q시리즈를 수석으로 통과한 뒤 2019년 US여자오픈 우승 등으로 신인왕에 오르기도 했던 이정은6도 7년 만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올해 19개 대회에서 6차례만 컷오프를 통과하는 등 전반적 부진으로 ‘지옥의 문’을 다시 두드리게 됐다. 이 밖에 장효준, 주수빈, 애니 킴, 신비, 윤민아 등도 시드 확보 전쟁에 합류했다. LPGA투어에서 한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일본도 2019년 AIG위민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 있는 시부노 히나코 등 4명이 출전한다.
이번 Q시리즈 최종전에는 총 111명이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며 4라운드 컷오프 후 최종 순위 공동 25위까지 내년 시즌 시드가 주어진다. 차하위 선수들에게는 2부 투어인 엡손투어 출전권이 부여된다.
한국은 1997년 박세리가 수석 합격을 한 것을 시작으로 그간 최혜정, 김인경, 이정은6, 안나린, 유해란 등 6명이 1등 성적표를 안고 투어에 데뷔한 바 있다.
경기가 열리는 매그놀리아 그로브코스는 박세리가 지난 2001년 AFLAC챔피언스, 2002년 모빌LPGA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두 대회는 타이틀만 바뀐 같은 대회)를 연속 우승한 인연이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PGA투어 Q스쿨 최종전(12.11~15 미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 비치 다이 밸리코스)
11일 밤 시작되는 최종전에 앞서 2일 밤부터 2차전이 진행되고 있다. ‘꿈의 무대’ 진출을 위해 도전장을 던진 선수는 김백준(24)과 이태훈(35), 배용준(25) 최승빈(24) 등 KPGA투어 출신 4명과 이미 PGA투어에서 활동하며 우승 경험이 있는 배상문(39), 강성훈(38), 노승열(34) 등 노장파 3명 등 모두 7명이다.
이들은 현재 미국 내 4곳에서 열리고 있는 2차전에 나서 최종전 진출을 위해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올해 KPGA투어를 제대로 휘어 잡아 상금, 대상 포인트 1위 등 5관왕에 오른 옥태훈(27)이 최종전에 선착해 있는 가운데 김백준, 이태훈, 배용준은 제네시스 포인트 2, 3 , 5위 자격으로 2차전 직행 혜택을 받은 케이스다. 반면 최근 4년간 계속 투어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최승빈은 지난 10월 열렸던 1차전에서 공동 16위를 기록하며 2차전에 합류했다.
이들은 지난해 국내 성적에 따른 특전으로 2차전 직행 후 공동 14위로 최종전 진출, 그리고 최종전 공동 14위로 콘페리 투어 시드 확보, 그리고 올시즌 콘페리투어 포인트 13위로 PGA투어 정규시드를 획득한 ‘이승택의 길’을 따라 가겠다는 각오다.

반면 정규투어 카드를 잃고 콘페리 투어 등에서 투어 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배상문 등 3명은 옛 영화를 노리며 다시 한번 출사표를 던졌다. 배상문은 2013, 14년 HP바이런넬슨과 프라이스닷컴 오픈에서 우승한 바 있고 국내서 열린 2015프레지던츠컵에서는 인터내셔널팀 일원으로 합류해 좋은 경기력을 보인 바 있으나 군복무 후 제기량을 되찾지 못해 고전 중이다. 강성훈은 2019년 AT&T 바이런넬슨에서, 노승열은 2014취리히클래식에서 각각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으나 이후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는 못한 채 콘페리투어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2차 관문을 통과해 최종전에 나서는 선수들은 ‘바늘 구멍 통과’ 경쟁을 다시 한번 펼쳐야 한다. 동점자 포함 톱5에게만 PGA투어 시드를 주기 때문이다. PGA투어는 2023년부터 ‘실력에 기반한 루트 다양화"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즉 Q스쿨을 통한 시드 부여 숫자를 대폭 제한하는 대신 콘페리투어에 부여하는 숫자를 30명까지 늘렸다.
또한 대학선수들의 랭킹에 따라 시드를 주는 ‘PGA Tour University Rangking’ 시스템, 즉 선수들의 대학대회 성적, 아마추어 메이저대회 성적, 세계 아마랭킹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1위에게는 Q스쿨 톱5 대우를, 2~5위에게는 콘페리투어 풀시드를 주기도 한다. 아울러 DP월드투어 상위 10명에게도 시드를 부여하는 등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 투어 입성 기회를 주고 있다. 실력 위주, 그리고 단기간의 성적이 아니라 한 시즌의 성적을 기반하는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진정한 실력자를 가려 내겠다는 취지다.
올해 과연 LPGA투어 Q시리즈에서 2022년 유해란 이후 3년 만에 수석 합격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인가. PGA투어 Q스쿨 최종전 진출자는 몇 명이나 될까. 또 거기서 이승택의 뒤를 이어 시드를 받는 선수가 배출될 것인가. 이제는 Q스쿨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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