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LA=황덕준 재미 언론인] 유니콘은 '하나(Unus)'와 '뿔(Cornus)'을 뜻하는 라틴어가 결합된 단어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역사가 크테시아스(Ctesias)가 인도에서 이마에 뿔이 하나 달린 야생마를 보았다는 기록을 남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그 신화적 의미를 차용해 '매우 희귀하고 독보적인 존재'를 일컬을 때 사용되고 있다.
오타니 쇼헤이가 메이저리그(MLB)에서 네번째 MVP를 수상하자 그의 글로벌 스폰서 기업 중 하나인 스포츠 브랜드 '뉴밸런스'는 "Four MVPs. One Unicorn"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축하광고를 만들었다. 광고에서는 집사 복장의 남성이 등장, "사람들은 줄곧 역사상 최고(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운을 뗀 후 다음과 같이 선언하듯 외친다.
"GOAT, GOAT…진부해졌다. 얄팍하다! 의미가 없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하지만 나는 이렇게 부른다.비교 불가능, 닥치고 봐라, 유니콘!"
배리 본즈가 7번의 MVP를 수상한 기록을 갖고 있는데 비하면 오타니는 아직 가야할 길이 더 남아 있지만 4회 수상 모두 '만장일치'로 선정된 것은 MLB 사상 최초이다. 그러니 희귀하고 독보적인 유니콘다운 업적이라는 데 토를 달 수는 없겠다.
무엇보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유일무이한 선수로서 쌓은 숫자들은 순수하고 정통하다. 약물의 힘을 빌렸다는 의혹 탓에 명예의 전당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는 본즈의 오염된 홈런 기록과 그에 따른 MVP트로피에 비하면 말이다.
오타니가 LA다저스에서 월드시리즈 2연패를 이루며 보낸 올해는 새삼 숫자로 되돌아보기조차 번거롭다. 홈런 55개,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는 내셔널리그에서 유일한 1.014. 투수 복귀 이후 14차례의 선발등판에서 투구횟수는 47이닝에 불과했지만 100마일(약 161km)짜리 강속구를 과시하며 탈삼진 67개에 평균자책 2.87의 안정된 지표까지.
흥미로운 건 그 기록에 대한 반응이다. 미국의 스포츠 미디어는 "이제 그에게 놀라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놀랍다"고 표현할 정도다. 다저스의 본거지인 로스앤젤레스의 유력지 LA타임스는 이렇게도 말했다. "오타니는 동시대 선수들과 격차를 너무나 벌려 놓아 다른 선수가 MVP를 차지할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오타니는 일본 야구의 정교함을 몸에 새기고 자랐지만, 그 틀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파워 중심의 미국 야구를 흡수했고, 평소 루틴과 자기관리는 일본 특유의 치밀함이 살아 있다. 하지만 그 둘의 혼합체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어떤 야구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선수다.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스즈키 이치로와 다른 점이 그것이다.
한국의 야구팬들은 이치로를 그저 야구 잘하는 일본인으로만 봤다. 경계심과 부러움, 질투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있었다. 오타니를 보는 한국팬의 눈길은 이치로를 대할 때와 다르다. 일본인이지만 국적을 따지기에 앞서 아시안으로서 동질감이 우선된다. 한계를 깨뜨린 투타겸업의 활약에 존경심마저 갖는다. 그 배경에는 오타니의 겸손하고 차분한 인성이 있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이치로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국을 부숴버리겠다"는 자극적인 발언을 내뱉었다.장칼을 휘두르는 사무라이의 결기였다. 오타니는 같은 경쟁무대에서 결코 그따위 격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을 좋아한다"라며 함께 싸우고 패한 한국대표팀 선수들을 위로하고 허리 숙여 인사까지 했다. 오타니의 성격은 폭발하는 천재라기보다 지속 가능한 슈퍼엘리트쪽에 가깝다.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겸손하지만 압도적이다.
한국 팬들이 그를 신뢰하게 된 결정적인 지점도 이 같은 태도를 만든 인성이다. 이치로와 비교되는 그의 성품에 빠져들다보니 국적을 잊게 되고 심지어 한국계가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심리적 동화현상도 없지 않은 듯하다. 야구스타를 넘어 문화적 초월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비치는 것이다.
오타니의 네번째 MVP 수상은 완성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서막이다. 야구계는 한국 일본 미국 할 것없이 오타니의 다섯 번째 MVP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내년시즌에는 풀타임 투수로서, 온전한 투타겸업의 1년이 될 것이므로 그같은 예상은 자연스럽다.
오타니는 이미 자신을 뛰어넘는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왔다. 메이저리그는 오타니가 설정한 기준을 새로운 도전으로 여기고 있다. 내년 7월이면 32살이 되는 오타니가 30대 중반을 넘어 40대를 바라볼 때까지 투타겸업의 유아독존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지난 1일 월드시리즈가 다저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직후 오타니의 부친 도오루 씨는 '스포츠닛폰'을 통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했다. 오타니가 홈런을 치면 기뻐하는 어머니와 달리 도오루 씨는 "저렇게 높은 공을 치다니, 홈런이 돼 다행이지만 다음에 그런 공을 또 치면 헛스윙이 될 걸"이라는 생각부터 한다고 했다. 결과가 좋아도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속내를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투수와 타자, 한쪽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올 거다. 투수를 하기 힘들면 외야수라도 좋다. 쇼헤이라면 할 수 있다"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바로 그것이다. 투타겸업의 시대를 끝냈을 때 오타니가 불러일으킨 메이저리그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지금처럼 상승곡선을 그릴지 의문이다. 그 이후 '유니콘'급 선수가 또 등장할 것인지가 도전이고 숙제이다.

djktow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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