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청년 연령 제각각·부처 '칸막이' 혼선
"청소년·중장년 포괄정책 마련해야"

<중>편에 이어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완전한 은둔 청년을 발굴하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 정신질환을 동반한 청년을 위한 맞춤형 지도체계 마련도 절실하지만, 정책 속도는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별 청년 연령 기준이 제각각이고, 부처 간 '칸막이' 문제까지 겹치며 정책 혼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청소년부터 중장년까지 포괄하는 고립·은둔 통합 정책의 밑그림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기지개센터 고립·은둔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 가운데 기관 소개나 추천으로 들어온 청년은 전체의 3.4%(153명)에 불과하다. 은둔 정도가 심할수록 자발적 참여율이 낮아 직접 발굴이 필수적이지만, 센터 인력만으로 파악하기엔 쉽지 않다. 울산센터 홍국진 팀장도 "통계나 수요조사가 있어도 모두 추정치라 참고사항일 뿐, 실제로 집 안에 숨어 있는 청년을 기관 한 곳에서 모두 발굴하기엔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에 "지역 행정복지센터 등 유관기관을 최대한 활용해 숨어 있는 청년을 발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협조 방식이 구체적으로 정립돼 있지 않아 현장에서 혼선이 존재한다"며 "복지센터에서 청년을 파악해 연결해준다든지, 고용 관련 부처에서 대상 가능성이 높은 청년을 안내해준다면 저희가 본연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고립·은둔 청년 사업은 신사업인 만큼, 기존 복지사와 다른 역량을 가진 전문 인력도 요구된다. 홍 팀장은 "공동숙식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생활지도자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마침 센터 내 청소년쉼터 근무 경험이 있는 분이 있어 인력을 겨우 배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합사례관리사'조차 청년 접근·개입 경험이 제한적이다. 김 센터장은 "고립생활이 장기화된 한 청년의 부모 의뢰로 사례관리사가 청년의 방을 열었는데, 놀란 청년이 물건을 던지며 난리가 난 적이 있다고 들었다"며 "강제 개입은 자칫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문가들에게는 고도의 민감성과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사회복지사 교육과정에 '고립·은둔청년의 이해', '청년복지론' 등을 신설해 맞춤형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홍 팀장은 "기존 복지시스템으로 고립·은둔청년을 감당할 수 있었다면 새로운 기관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맞춤형 전문가 양성을 통해 인력 전문성을 확보하고, 처우가 함께 개선돼야 장기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을 동반한 청년군을 위한 맞춤형 지도 시스템도 절실하다. 올해 8월 기준 기지개센터 사업 참여 청년 가운데 약물 복용 경험자는 2282명(51.2%)에 달했다. 과거 복용 경험 비율도 23.1%에 이른다. 울산센터에서도 사업 참여자의 20~30%가 정신질환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고립·은둔청년도 적지 않은 만큼, 치료를 우선으로 하되 센터 내 정신건강전문가 전담 인력을 신설하거나 지역 보건기관과 긴밀히 연계하는 협력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 센터장은 "공황장애가 있는 청년의 경우 지하철 환승조차 어려워 중간에 내려 쉬기도 한다"며 "거주지 인근에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권역센터를 25개 자치구 전체로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위기아동·청년을 위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의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법'이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고립·은둔청년만을 위한 단독 법률 제정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센터 관계자는 "위기아동·청년법은 가족돌봄 청년이 함께 묶여 있고, 아동 연령도 섞여 있어 고립·은둔청년만을 위한 별도의 법률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청년 연령에 대한 기준도 지역마다 달라 정책 혼선이 존재한다. 청년기본법은 19~34세를 청년으로 규정하지만, 서울·경기 등 15개 광역단체는 39세, 강원·전남은 45세까지 청년으로 본다.
법령마다도 연령 기준에 차이가 있다. 일자리·고용 분야 법령인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시행령은 15~29세, 중소기업인력지원 특별법과 고용보험법 시행령은 15~34세를 청년으로 규정한다. 이에 청년 연령을 일원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1대 국회에서는 청년 연령 상한을 39세 이하로 확대하고, 연령 기준을 일원화하는 내용의 청년기본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진 씨의 사례처럼 청년 고립·은둔은 청소년 시기와 같은 연속선상에 놓인 경우가 많은 만큼 청년과 청소년 정책 관련 행정부처를 통합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24세 은둔 청년 중 7년 이상 은둔한 비율이 6.2%에 달했다. 이는 청년 고립·은둔 문제에 청소년기부터 조기 대응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OECD 주요 국가들은 아동·청소년·청년 정책을 아우르는 전담 부처를 두는 추세다. 핀란드는 교육문화부가 주관하는 국가 청년 정책의 연령 범위를 0~29세로 설정하고 있고, 노르웨이는 어린이·청소년·가족부에서 포괄적인 청년 정책을 담당한다.

중장년 고립 대책도 긴 안목에서 필요하다.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장은 "30대 후반 청년들은 지원 연령 상한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절박함을 호소한다"며 "중장년 고립 취약성도 정책적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범 씨도 "센터에서 회복했지만 활동 기한이 끝나는 40대에 다시 고립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지금 당장은 중장년 고립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사후 관리까지 포함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중장년층의 사회적 고립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2019년 내각부가 처음 실시한 중장년층 대상 히키코모리 실태조사에서 40~60세 히키코모리는 61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고립 기간은 7년 이상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45%였고, 10~20년 이상도 17%에 달해 중장년 사회적 고립은 이미 만성적인 문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 제도 개선을 위해 오는 7일까지 범정부 정책소통 플랫폼 '국민생각함'을 통해 의견수렴을 받고 있다. 권익위는 이번 의견수렴을 통해 이들이 은둔하게 된 근본 원인과 계기를 파악하고 어떤 지원이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파악한 후 발굴·지원체계 확대·가족 심리상담 등 제도 개선 방향을 수립할 계획이다.
현장과 입법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 고립·은둔청년만을 위한 정책 밑그림을 촘촘하게 그려야 할 시점이다. 김 센터장은 "청년들도, 전담기관도 모두가 '과도기'다. 청년이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지 않도록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준영 씨는 "은둔의 시간은 결코 무가치한 시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립 청년들에게 "수많은 길 중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지만, 한 번 넘어져 봤기에 다시 넘어지더라도 버틸 힘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방 밖을 나서는 한 걸음이 가장 힘들었고, 실제로 방 문을 열기까지 3년이 걸렸지만, 막상 신발을 신고 나가니 그 순간부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며 "공백기를 죄처럼 생각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대로 한 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지개센터 고립·은둔청년들이 지난 2월 펴낸 또다른 이야기책 <기지개 모아 무지개>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구김 없는 종이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휙 날아갈 수도 있지만, 무수히 많은 접힘이 있는 종이는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구겨진 오늘을 이겨낸 당신에게는 커다란 힘이 생겼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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