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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인터뷰] 염혜란, '어쩔수가없다'로 깨달은 욕망
아라 役 맡아 이성민과 부부 호흡
"박찬욱 감독님과의 작업, 오감을 예민하고 예리하게 만들어"


배우 염혜란이 영화 '어쩔수가없다'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CJ EMM
배우 염혜란이 영화 '어쩔수가없다'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CJ EMM

[더팩트|박지윤 기자] 좋은 의미로 무섭다. 매 작품 얼굴을 갈아 끼우는 배우 염혜란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는 누구나 한 번쯤 작업을 꿈꾸는 박찬욱 감독의 손을 잡고 자신도 미처 몰랐던 욕망을 마주하며 또 한 번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염혜란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 개봉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작품에서 아라 역을 맡아 관능적인 미모와 매력을 맘껏 드러낸 그는 이날 "실망하실까 봐 샵에 다녀왔다"고 재치 있는 인사를 건네며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9월 24일 스크린에 걸린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두 자식을 지키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소설 'THE AX(액스)'를 원작으로 한다.

먼저 염혜란은 작품을 본 소감을 전했다. 기술 시사를 포함해 총 다섯 번 관람했다는 그는 "처음에는 제 연기만 보여서 '왜 이렇게밖에 못했지'라는 아쉬움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계속 느낌이 달랐다. 희한한 영화"라며 "제가 나온 걸 이렇게 많이 본 게 처음이고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수다가 고픈 작품"이라고 말했다.

염혜란은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범모의 아내 아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CJ ENM
염혜란은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범모의 아내 아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CJ ENM

배우라면 누구나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을 꿈 꿀 것이고 염혜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대본을 받고 단번에 출연을 결심하지 못했다고 밝혀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는 "뱀 공포가 심한데 너무 어처구니없이 첫 장면부터 뱀이 나오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여쭤봤더니 '전부 다 CG로 할 거야'라고 말씀하셔서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박 감독과의 첫 호흡은 어땠을까. 그동안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의 작품을 관람했던 염혜란에게 '어쩔수가없다'는 뜻깊은 작업 현장이 됐다.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첫 대본부터 여러 수정본을 거쳐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이라서 걱정됐어요. '마스크걸'을 함께한 미술감독님께 고민을 말했더니 '현장에 자주 놀러 와라'라고 하시더라고요. 몇 번 만나지 않고 연기하는 것보다 익숙해지고 나서 연기하면 훨씬 도움 될 거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촬영장에 자주 갔고 첫 대본부터 수정본을 거쳐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어요. 너무 귀한 경험이었고 과정을 보니 더 대단하신 분이었죠."

이어 현장에서 많은 디렉션을 받은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박찬욱 감독만의 디테일함에 놀랐던 지점도 언급했다. 염혜란은 "박 감독님과의 작업은 감각을 미세하게 확장시키게 된다. '이거'와 '요고'의 디테일한 차이부터 단어를 어디에 붙일까 등을 고민하는데 이는 오감을 예민하고 예리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아라는 반복되는 오디션 낙방에도 자신감과 낭만을 잃지 않는, 예술적 기질을 지닌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다. 그는 실직 후 시들어가는 범모(이성민 분)에게 실망하면서도 한때 사랑했던 남편의 열정적인 모습을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저에게 없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왜 나에게 아라를 제안하셨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이를 연기하다 보니 저에게도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염혜란은
염혜란은 "제가 나온 걸 이렇게 많이 본 게 처음인데 작품의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수다가 고픈 작품"이라고 말했다. /에이스팩토리

'어쩔수가없다'를 만난 염혜란은 다이어트와 네일아트 등을 통해 외적 비주얼에 변화를 주며 지금껏 본 적 없는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한 그는 믿고 보는 연기로 이성민과 함께 다정함과 권태를 오가는 현실적인 부부를 완벽하게 그려내면서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아라는 나쁜 사람처럼 보여요. 이성민이라는 배우를 향한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이 있으니까 범모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애처롭게 느껴졌고요. 아라가 범모에게 '실직이 문제가 아니라 실직을 대처하는 방법이 문제'라고 말하잖아요. 이 대사가 정말 중요했어요. 그동안 많은 시도를 했지만 부부 관계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은 거죠. 단순히 팜므파탈처럼 보이고 젊은 애가 좋아서 바람피우고 범모가 답답해서 죽인 것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어요."

아라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을 전한 염혜란은 부부로 만난 이성민을 향해 무한한 존경심도 드러냈다.

"'소년심판'을 같이 했는데 딱 한 번 부딪혀서 호흡을 제대로 나누지 못했어요. 배우고 싶고 좋아하는 선배님과 부부로 호흡해서 행복했죠. 연기 디렉션을 요구하시는 게 없었어요. 사실 혼자 전화하는 연기가 어려운데 그 호흡을 기가 막히게 하시더라고요. 옆에서 지켜보니까 대단했어요. 하나도 허투루 하는 게 없으시니까 작은 장면도 소중했어요."

1999년 극단 '연우무대'로 연기를 시작한 염혜란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출연하며 영화로 데뷔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는 '도깨비'에서 지은탁(김고은 분)을 괴롭히는 악독한 이모로 분한데 이어 '동백꽃 필 무렵'에서 철부지 남편 규태(오정세 분)와 이혼하는 변호자 자영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후 염혜란은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가정폭력으로부터 딸을 지키려는 엄마 현남 역을, '마스크걸'에서 마스크걸에 의해 아들을 잃은 엄마 김경자 역을,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의 엄마 광례 역을 맡아 보는 이들을 웃고 울리고 몰입시키는 대체 불가한 열연을 펼치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염혜란은
염혜란은 "우리 극장에도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CJ ENM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을 받으면 무슨 역할이든 하고 싶죠. 물론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은 있지만 제안을 받는 자체로 행복해요. 제가 전작과 다른 캐릭터를 선택하니까 시청자들이 새롭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이제 제 실타래가 많이 풀려서 다시 감아야 할 시기인 것 같고요(웃음)."

이날 염혜란은 에너지 넘치게 답변을 이어갔지만 그 안에는 현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겸손함이 깃들어 있었다. 흥행하는 작품 속 더 인상 깊은 캐릭터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일자리를 잃고 계속 취업 실패를 겪는 '어쩔수가없다'의 만수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영원하지 않기에 더 특별한 지금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전성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는 이러한 염혜란의 마음가짐은 앞으로 그가 보여줄 행보를 더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제 입지가 좁아질지언정 실업할 거라고 생각을 못 하다가 만수를 보고 엄청난 상실감이 들고 힘들겠더라고요. 지금 저에게 전성기라고 해주시는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행복한지 모르는 지금 이 시간이 진짜 행복한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지나야 나의 최고가 지금이라는 걸 알게 될 것 같아요. 대세는 유행이고 유행은 언젠가 끝나잖아요. 물론 돌아올 수 있겠지만 내리막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막연하기도 해요."

이렇게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배우로서의 행보까지 되돌아본 염혜란은 "예전에는 혼자 조용히 보는 조조 영화를 선호했는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꽉 찬 극장에서 누군가와 같이 웃는 즐거움을 잃어버린지 오래"라며 "함께 호흡하고 느끼는 게 소중하다는 걸 베니스에서 느꼈다. 부디 우리 극장에도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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