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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명절 <중>] 제도 밖 사람들…'생활동반자법'은 왜 필요한가
함께 살아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용혜인, 생활동반자법 재발의
이호림 "국회, 모든 시민 가족구성권 보장해야"


생활동반자법은 성년 두 사람이 상호 합의로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해,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더팩트 DB
생활동반자법은 성년 두 사람이 상호 합의로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해,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더팩트 DB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그러나 모두가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 1인 가구, 독거노인, 반려동물에게 추석은 외로움과 소외가 더해지는 시간이 되곤 한다. <더팩트>는 명절의 온기가 닿지 않는 '추석 사각지대'의 목소리를 3편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늘 아프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프면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없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족과 사실상 연을 끊은 A 씨는 <더팩트>에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 나는 보호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진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생활동반자법은 성년 두 사람이 상호 합의로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해,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결혼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동거인, 친구, 애인 등이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 이들은 '가족이 아닌 존재'로 분류된다. 응급 상황에서는 수술 동의를 할 수 없고, 함께 살아온 동반자가 사망하더라도 장례 절차에서 상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실질적 가족이지만, 법의 테두리 밖에 놓여 있는 셈이다.

생활동반자법은 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지만 끝내 폐기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국내 최초로 법안을 발의했고, 장혜영 정의당 의원 역시 같은 취지의 법안을 냈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당시 법안 발의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더팩트>에 "21대 당시 논의가 없어서 임기 만료 폐기가 됐다"며 "사실 (정치권에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생활동반자법은 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지만 끝내 폐기됐다. 사진은 지난달 생활동반자법을 다시 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배정한 기자
생활동반자법은 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지만 끝내 폐기됐다. 사진은 지난달 생활동반자법을 다시 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배정한 기자

용 의원은 지난달 3일 생활동반자법을 다시 발의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이를 주요 의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동성애 이슈'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해 적극적인 논의를 꺼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더팩트>에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에 유독 정치권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다"며 "국민적 정서 또는 여론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회안의 분위기가 생활동반자법에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동성애자 B 씨는 "이번 생에 이성애 부부와 동일한 혜택을 받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라면서도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보호자나 대리인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비혼을 선언한 C 씨는 최근 친구가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친구가 병원에 실려 갔는데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119를 불러 접수까지 했음에도 검사 결과나 입원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만약 상황이 더 심각했고, 친구가 원가족과 절연했거나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였다면 정말 답답하고 절망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지만, 국가는 여전히 혼인과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 틀에 갇혀 있다. 그 사이, 제도 밖의 관계들은 의료·행정·복지 시스템에서 꾸준히 배제되고 있다.

이호림 모두의 결혼 대표는 정치권이 생활동반자법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본질을 지적한다. 그는 "많은 정치인이 실제 제도가 절실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삶과 무관한 제도 변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며 "차별금지법이든, 동성혼 법제화든 이제는 ‘반대하는 차별주의자’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제도적 욕구를 가진 당사자 중심의 논의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의 취임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이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더팩트 DB
일각에서는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의 취임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이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더팩트 DB

일각에서는 원민경 여성가족부(現 성평등가족부) 장관의 취임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이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원 장관은 후보자 시절 "실재하는 가족 현황과 외국 사례, 국민 기본권 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련 논의가 진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비혼 출산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달 8일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비혼 동거를 새로운 가족 유형으로 공식 인정하란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비혼 출산과 관련한 제도 개선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생활동반자법이 특정 집단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해당 법은 '정상 가족' 의 범주에서 벗어나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라는 것이다.

이호림 대표는 "서로의 가족이 아니라서 겪었던 일상에서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 법적인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며 "한 사람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보호자로 함께할 수 있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삶의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1인 가구로 분류된 사람 중에는 배우자나 연인,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국가와 사회는 이 관계를 '가족'으로 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정상 가족' 중심으로 짜인 정부 정책에서 계속 배제되고 있다"면서 "이미 현실에서는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이들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시민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bongou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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