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TO 생기는 구조…"돌봄 패러다임 전환 必"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88)하다가 2~3일 앓고 죽는(死·4) 것이 소망이라는 의미다. 잘 죽는 것, 이른바 웰 다잉(Well Dying)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요양원의 노인들은 추석과 같은 민족 대명절에도 외곽으로 밀려나 가족 곁에 있기 어렵고, 요양병원에선 학대와 방임, 과잉 진료 문제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국민 5명 중 1명은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금, 정치권이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할지 <더팩트>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하린 기자]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60대 김 모 씨는 최근 모친의 치매로 요양원을 알아보던 도중 어려움을 겪었다. 자택 인근 요양원에 대기 문의를 했지만 "최소 3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수소문 끝에 경기 북부 외곽에 위치한 시설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왕복 4시간에 달하는 거리였다. 거리가 멀어진 만큼 모친의 마지막 곁을 지킬 수 있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어든 것이 못내 사무쳤다.
1530번.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서울요양원의 '2025년 8월 대기자 명단'에 적힌 마지막 대기자 순번이다. 건보공단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전국 유일 요양원으로, 일반 민간 요양원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다. 다만 정원은 150명뿐이고, 중증인 노인장기요양등급 1~2급만 우선적으로 입소할 수 있다. "자리가 난다는 것은 곧 기존 입소자가 세상을 떠야 한다는 뜻"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21년에 신청한 일부 대기자는 아직도 입소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경기도 등 지방 요양시설은 정원에 비해 현원이 부족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의 한 치매전담실은 정원 25명임에도 입소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인구가 밀집한 도심의 요양시설은 대기자가 몰려 쉽게 입소할 수 없는 반면, 외곽 시설은 공실로 인해 경영난을 겪는 모순적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요양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51만 4000명을 넘기면서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장기요양 인정자도 지난해 116만 명으로 5년 전보다 35.8% 증가했지만, 시설 확충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돌봄 연구자인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달 16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전국적으로 공급이 충분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작 원하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민간 요양시설은 땅값이 저렴한 지역에 주로 세워지다 보니 대부분 외곽에 위치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돌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년기 돌봄 수요가 높아진만큼 단순히 생명 연장 차원을 넘어, 삶의 질과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관련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공공과 민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규제를 적절히 조정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요양 시설 인력 기준 강화나 재정 지원 확대 등 정치권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요양시설의 수요와 공급을 면밀히 관리해 시설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달 15일 통화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양적·질적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중심이 돼 요양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공공시설 확충과 규제 조정으로 적재적소에 시설을 공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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