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수원=이성락 기자] SK그룹의 역사는 수원시 평동 7번지에서 시작된다. 1926년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회장과 1929년 동생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태어나 40여년 동안 살았던 한옥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이곳은 'SK 고택'으로 불린다. SK그룹은 지난해 4월 형제의 생가를 복원해 국가 경제의 성장사와 기업가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기념관 SK 고택을 공개했다.
지난 27일 방문한 SK 고택은 다소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먼저 외부에서는 학유당(學楡堂)이 새겨진 현판이 보였다. 최 창업회장과 최 선대회장의 부친인 최학배 공의 '학(學)'자와 창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느릅나무의 '유(楡)'자를 합한 것으로 '창업자의 고향'이라는 의미다.
외관상 특별함 없는 소박한 한옥이었다. 그러나 곳곳을 살펴보니, '회장님 생가'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규모는 확인할 수 있었다. 최학배 공은 고택 인근에 논밭을 크게 보유하고 있던 부농이었다. SK 고택은 1111㎡(약 336평) 크기의 대지 위에 75㎡(약 22평) 크기의 한옥과 94㎡(약 28평)의 별채로 구성돼 있었다.

내부를 살펴보니, 유독 부엌과 찬방이 넓어 보였다. 8남매 대가족이 살았던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 창업회장과 최 선대회장의 모친 이동대 여사는 손님, 심지어 걸인이 찾아와도 손수 찬을 지어 대접할 정도로 넓은 부엌을 통한 나눔을 아끼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대청마루도 성인 5명은 거뜬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안방에 있는 봉황새 이불이었다. 봉황새가 새겨진 이불은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의 인기 상품으로, 해당 이불이 가지런히 놓인 고택 안방이 SK그룹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방에는 달러 지폐로 채워진 상자도 있었다. 이 역시 선경직물과 관련이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달러 지폐는 최 선대회장의 유학 자금이었는데, 형인 최 창업회장이 1953년 선경직물을 인수할 당시 자금 부족을 겪자, 이 달러를 최 창업회장에게 건네고 유학을 미뤘다는 이야기다. 최 선대회장이 형과 SK그룹의 시작을 응원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잠시 내려둔 것이다.

최 창업회장이 선경직물을 인수하려 한 이유는 6·25 전쟁 탓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공장 인수를 반대했던 최학배 공도 이러한 뜻을 높이 평가해 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SK 고택 내 한옥은 최 창업회장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위해 잿더미로 변한 공장에서 부품을 주워 다시 공장을 세우게 되는, '인재보국'을 구상한 터전인 셈이다.
이 외에도 한옥은 최 창업회장이 회사를 설립하고, 최 선대회장이 'Made in Korea' 제품 수출과 사업 고도화에 전념한 1950~1960년대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내부는 실제 사용했던 유품과 시대상을 반영한 전시품으로 채워 당시 SK가(家)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했다.
창고로 쓰였던 별채는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임직원 약 12만명 규모의 현재 SK그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3대의 역사를 통해 확인하고, 선대의 나눔 정신이 SK의 사회적 가치 활동과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경영 철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관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최 창업회장과 최 선대회장이 사용했던 금고였다. 조심스럽게 열어 보니 기대와 달리 아무런 물품이 없었다. SK 고택 관계자는 "과거 금고에는 금융 서류 또는 경영 기밀문서를 넣어 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섬유뿐만 아니라 추후 화학 산업을 일으키고 정보통신, 반도체 등으로 나아가는 SK그룹 경영의 큰 그림이 이 금고 안에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봄 직했다.
전시관에서는 "구부려진 것은 펴고 끊어진 것은 잇는다"라며 포기가 아닌 도전을 외치고 "회사의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본인 세대 노력이 후대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 최종건 회장의 창업 이념도 엿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인재보국'을 평생 실천한 최 선대회장의 어록인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 "나무를 키우듯 인재를 키운다" 등의 문구도 전시관 한 면을 채우고 있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당시 1000억원 이상 비싼 값에 샀다는 여론이 일자 "우리는 회사가 아닌 미래를 샀다"라며 미래 산업 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보인 최 선대회장의 일화도 전시관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rocky@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