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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한 달’에 들어본 '세설(世說)' [이우탁의 인사이트]
특별감찰반-중도 인사 발탁-빠른 일처리 등 좋은 평가
기민한 판단력, ‘실용외교에서도 발휘’ 주문 많아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대학시절 배운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중국 후한말부터 동진까지 유명한 문인이나 학자, 제왕 등의 인물품평을 담은 책이다. 과장과 허구가 담긴 내용이 많았지만 시중의 여론을 절묘하게 압축한 문체가 일품이다.

기자가 돼서는 세설(世說)을 논쟁적 인물에 대한 시중여론을 들어보는 것으로 여기고 언론계나 주요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세평취재’를 하는게 습관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 기자회견을 한 지난 3일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인들과의 회동이나 식사 자리가 있었다. 당연히 이 대통령의 취임후 행보가 화제가 됐다. 지난 대선 투표 결과처럼 반반의 논쟁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한 달 사이 묘한 변화가 있었다.

보수색이 짙은 분들은 대선 이후 거의 뉴스를 보지 않았다면서도 취임 30일 기자회견은 유심히 봤다고 했다. 한 지인이 "역시 막힘없이 대답을 잘하더만, 그런데 그게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적대적 공생관계였던 만큼 이 대통령을 얘기할 때마다 비교 대상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주 등장했다.

언론계 지인은 "시장에 경기도지사, 의원과 거대 야당의 대표를 지내서인지 확실히 준비는 돼있더라. ‘별의 순간’인지 뭔지로 벼락스타가 되고는 정계 입문 9개월 만에 대통령이 된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긴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지인이 촌철살인의 품평을 날렸다.

"정말 슈루드(shrewd)한 인물인데...두고봅시다." ‘슈루드'는 '상황 판단이 빠른’ 또는 ‘기민한’ ‘재빠른’으로 사전에선 풀이하는데 영리하거나 심지어 영악한 인물에 적합한 복합적 의미의 표현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 추진력 좋고 일머리가 좋을 때 쓰인다. 현 시점에서 아주 절묘한 ‘세설 품평’ 아닌가.

대선승리의 공신들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에서는 영락없이 진영의 수장이더니 과감하게 중도성향의 유능한 인재도 발탁해 나름 신선함을 선사했다. 3년 전 이준석 대표를 몰아내고, ‘후보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 의원을 팽했던 전 대통령의 일방독주와 탈선과 비교해서 더욱 점수를 받는 분위기다. 어찌보면 ‘윤석열 기저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주말에도 국무회의를 열어 꼭 처리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짓는 기민함도 점수를 따는 요인이었다. 일하나는 속도감있게 잘한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분들이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특별감찰관 임명을 지시한 것을 들었는데, 필자도 공감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친인척을 위해서라도 "권력은 견제하는 게 맞다"는 말에서 ‘권력의 속성’을 간파한 판단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대통령 배우자를 포함해 친인척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이석수 특감이 임명돼 활동했지만 3년 임기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해임됐고,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들 기억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도 후보시절에는 특별감찰관 임명을 공약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들 짐작할 것이다. 만약 윤 전대통령이 특감을 임명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딱히 뭐라고 대답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정작 대통령이 탈선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두눈뜨고 지켜보지 않았던가.

거대여당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이 대통령은 이전의 그 어떤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행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해야할 야당은 여전히 계엄과 탄핵의 굴레에서 헤매고 있다. 자칫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기 딱 좋은 환경인데, 자기는 물론이고 주변도 단속하겠다니.

그런데 ‘세설의 대화’는 외교분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비상계엄 이후 멈춰섰던 대한민국의 외교를 신속하게 회복해야 하는데 뭔가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인들은 ‘보수세력이 공격하기 위한 무리한 프레임’이라고 방어막을 치기도 했지만 의아해하는 기류는 여전했다.

특히 가장 큰 관심을 모은 화두는 역시 중국 정부가 올해 9월 예정된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이 대통령을 초청한 일이었다. 정부의 최종 결정이야 지켜보자면서도 "이 시점에서 굳이 텐안먼 망루에 오를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견이 많았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도 썼듯이 미국은 지금 중국을 패권도전국으로 상정하고 이를 굴복시키기 위한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핵심동맹국을 향해서도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지 말라"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2015년 같은 행사에 초청받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 올랐을 때와 현재의 달라진 미중관계가 가장 큰 변수로 거론됐다.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실용외교가 자칫 미국과의 갈등을 초래하는 뇌관이 돼선 곤란하다는 걱정이 쏟아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용외교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도 ‘전략적 행보’를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시진핑을 만나기 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빨리 진행해 한·미 간 호흡을 조율한 뒤 중국 문제에 공동대응하자는 내용이 가장 무게가 있었다. 또 중국을 방문하더라도 전승절 열병식이 진행되는 망루에는 오르지 않거나 "건강이상설이 도는 시진핑을 지근거리에서 살펴보는" 기회로 활용하자는 창의적 해법도 한 지인이 제시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한국 외교장관이 불참하기로 한 것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외교역량의 구축작업이 기민하게 이뤄지지 않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외교라는 영역은 다른 국내 정치사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외교와 전쟁은 국가라는 행위자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국익의 관점이 서로 다른 국가의 전략적 행위를 다른 상대국에 강제할 수 없는 속성이 있다.

국내 현안에서 기민하게 움직인 이 대통령이 남다른 학습능력을 발휘해 외교분야에서도 좀 더 기민한 판단을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취임 6개월 뒤의 ‘세설 취재’가 어떻게 바뀔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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