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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특별법 ①] '전세사기' 수법은 날로 진화…법만 멈췄다
2030 사회초년생·신혼부부 피해 多
"살기 위해 집 구했던 건데 자책만 나와" 좌절
손 놓고 있는 정부·국회…피해자 '사각지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전세사기 수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변모했다. 문제는 법이 멈춰있다는 것이다. 전세사기 특별법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2년 연장됐지만, 적용 대상은 지난달 말 세입자까지로 제한된다. 지난 1일부터 계약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우 여전히 법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다. 많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전세사기 문제로 신음하고 있음에도 이를 지켜줄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다. /장윤석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전세사기 수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변모했다. 문제는 법이 멈춰있다는 것이다. 전세사기 특별법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2년 연장됐지만, 적용 대상은 지난달 말 세입자까지로 제한된다. 지난 1일부터 계약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우 여전히 법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다. 많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전세사기 문제로 신음하고 있음에도 이를 지켜줄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다. /장윤석 기자

통상 법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된다. 그러나 특별법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며 악순환을 반복한다. 오히려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근본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제정된 특별법에 대한 실효성과 한계에 대한 논의로 최근 국회가 떠들썩하다. 문제 해결의 속도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제대로 된 보완책 없이 밀어붙여 혼선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특별법의 제대로 된 개정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더팩트>는 이로 인한 법적 공백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총 4편에 걸쳐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하린 기자]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살던 A 씨 부부는 25개월 아이를 키우던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집이 경매로 B법인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대항력과 점유권으로 최대한 방어해 보려고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동사무소에서 "아이가 거주 불명이 됐는데, 혹시 아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이 연락으로 A 씨는 낙찰받은 임대인이 임의로 명도 절차를 밟아 하루아침에 거주불명자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명도 절차를 밟기 위해 임대인은 사실상 강제로 문을 개방했다. B법인은 '명도로 인한 법원 보관 물품에 관한 알림'이라는 글이 적힌 A4용지를 A 씨 자택 현관문 앞에 부착했다. 해당 종이엔 '명도제반비용 일금 팔십오만원(850,000원), 미납관리비 일금 천오백만원(15,000,000원)을 B법인 계좌로 입금한 뒤 법원 보관 물품을 찾아가라고 명시돼 있었다. 품목엔 TV(텔레비전)와 선풍기 등이 포함됐다. 법원의 정식 허가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임의로 진행됐음을 확인한 A 씨는 B법인을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으로 형사 고소했다. B법인은 지난 19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협상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사는 A 씨 부부는 하루아침에 거주불명자가 됐다. 법원의 정식 허가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임의로 진행됐음을 확인한 A 씨는 B법인을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으로 형사 고소했다. /독자 제공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사는 A 씨 부부는 하루아침에 거주불명자가 됐다. 법원의 정식 허가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임의로 진행됐음을 확인한 A 씨는 B법인을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으로 형사 고소했다. /독자 제공

A 씨는 <더팩트>에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솔직히 희망이 없지만 아이를 보며 겨우겨우 살고 있다. 전세 사기로 거주 불명까지 돼 시에서 지원하는 연 120만 원의 '천사 지원금'도 받지 못하게 됐고, 남편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천사 지원금은 2023년생 아이부터 인천 지역화폐인 '인천e음 카드' 포인트로 연 120만 원을 지급받는 제도인데, A 씨의 아이는 주민등록 말소로 ‘인천시에 부모와 함께 1년 이상 거주한 아동’이라는 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처럼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전세사기 수법은 갈수록 점점 더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변모했다. 문제는 법이 멈춰있다는 것이다. 전세사기 특별법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2년 연장됐지만, 적용 대상은 지난달 말 세입자까지로 제한된다. 지난 1일부터 계약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우 여전히 법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다. 많은 피해자가 여전히 전세사기 문제로 신음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줄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공식 집계된 전세사기 피해자 수는 3만 400여 명이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인 20·30대 청년층(75.1%)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의 임차보증금 규모는 대다수가 각 3억 원 이하였지만, 1억 원~2억 원이 42.31%로 최다였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임차보증금 총액은 4조 428억 원에 달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공식 집계된 전세사기 피해자는 3만 400여 명이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인 20~30대 청년층(75.1%)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새롬 기자
국토교통부가 지난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공식 집계된 전세사기 피해자는 3만 400여 명이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인 20~30대 청년층(75.1%)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새롬 기자

대학교 재학 중인 안산하(29) 씨는 학교 통학을 위해 자취방을 계약했다가 이른바 '깡통 전세' 사기를 당했다. 입주 후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요금 미납부로 인한 '단수 경고문'이 날라왔다. 2023년 6월 건축물 사용 승인을 받은 뒤, 불과 두 달 만인 8월부터 수도요금이 미납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 씨는 임대인에게 연락을 시도해 봤지만,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았다. 불길함을 느낀 임차인들은 오픈카톡방을 만들어 상황을 공유했다. 그러다 임대인이 회생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만난 안 씨는 "아직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지만, 보증금으로 넣어두었던 대출받은 1억 원에 그동안 모은 돈 2500만 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씨가 거주 중이었던 다세대 주택 역시 임차인 중 대다수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취업한 사회초년생(98년생~03년생) 피해자였다.

그는 "공인중개사가 계약 과정에 적극 가담해 거짓말을 쳤고, 지금은 문을 닫고 도망쳤다"며 "다른 피해자들이 저보다 전부 동생들인데 다들 너무 우울해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와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제가 뭐 투자를 했나, 투기를 했나. 살기 위해서 집을 구했던 것뿐인데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막막하다. 자책만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전세사기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현행 특별법으로는 피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정받으려면 '사기 의도'를 입증해야 하는 데 이 과정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피해자 인정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며 규정 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9명이 전세사기 문제로 사망했다. 그중 한 분은 생활고에 시달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다가 과로사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전세사기는 여러 공적인 제도가 얽힌 문제"라며 "악성 임대인이 전세대출과 보증보험 장치들을 악용해 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막지 않았던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underwat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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