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LA=황덕준 재미 언론인] 미국의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메모리얼데이다. 한국의 현충일 같은 날이다. 11월 11일인 재향군인의 날(베테랑스 데이)과 함께 연방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을 높게 평가한다. 그 중에서도 군인과 소방관을 유독 존중하는 문화가 두드러지게 보편화돼 있다. 목숨을 걸고 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재향군인의 날은 모든 군인에 존경을 나타내지만 메모리얼데이는 전쟁에서 생명을 바친 군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날이어서 한결 묵직한 기념일로 여긴다. 각 주마다 정한 기념일을 비롯해 연례행사로 치르는 날이 많은 미국이지만 법적으로 쉬는 것이 의무화된 유급휴일인 연방공휴일은 11개다.
그 가운데 날짜가 아닌 요일로 정해진 게 메모리얼데이를 포함해 6개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데이를 기념하는 연방공휴일은 그의 생일이나 기일이 아닌 1월 세번째 월요일이다. 2월 셋째 월요일은 대통령의 날이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탄생일이 2월 22일이지만 남북전쟁으로 노예해방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생일이 2월12일이어서 한데 묶어 '요일 지정 휴일'로 바뀌었다.
9월 첫째 월요일은 노동절, 10월 첫번째 월요일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데이다. 요일로 정한 공휴일의 마지막은 11월의 추수감사절이지만 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다. 17~18세기 미국에서는 목요일이 종교적 모임이나 강연, 공공행사가 자주 열리던 날이었고, 신대륙 초기부터 목요일에 감사예배를 드리는 관습이 있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대공황을 이겨내려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크리스마스와 보다 가깝게 이어지게 만들어 소비를 진작시키려고 아예 네 번째 목요일로 고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펼쳐 흑자를 이룬다는 '블랙 프라이데이'가 성행하고 있으니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논리는 맞아떨어진 셈이다.
미국 연방의회는 '공휴일이 실질적인 휴식과 소비로 이어지게 하자'는 실용성을 내세워 1968년 '통일 월요일 휴일법(Uniform Monday Holiday Act)'을 제정했다. 요일지정 공휴일은 1971년부터 이 법을 시행하면서 생긴 것이다.
덕분에 미국인들은 주말과 이어지는 '롱 위크엔드(Long weekend·3일 연휴)'를 즐기며 가족과 여행을 떠나거나 쇼핑을 한다. 기념의 의미보다 여가 활용과 경제적 효과에 방점이 찍혀 있다.추수감사절을 넷째 목요일로 정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발상이 '월요일 휴일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다민족·다문화 국가이다보니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모든 국민이 동일하게 기억하거나 공유하긴 어려운 구조다. 독립기념일(7월 4일)처럼 특정 날짜가 중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념일은 날짜 자체보다는 '전통적 의미'에 방점을 찍는다. '언제' 보다 그 날을 '어떻게' 보낼까에 무게중심이 있다는 말이다. 날짜가 매년 바뀌더라도 전통은 이어지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은 역사 그 자체가 기념의 대상이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고, 광복은 1945년 8월 15일에 찾아왔다. 날짜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지의 표현이며, 이를 바꾸는 것은 그 상징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 등 현대사를 이룬 굵직한 사건들이 특정 날짜와 결부돼 있어서 날짜를 통해 기억을 계승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공휴일은 거의 예외 없이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그 날'을 중심으로 설정된다. 이는 단일민족, 단일언어의 구조 속에서 단일한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기념일은 단지 쉬는 날이 아니라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 가치를 재확인하는 사회적 장치 아니겠는가.
이처럼 기념일을 대하는 방식만 봐도 한국과 미국 두 사회의 문화적 차이가 드러난다. 한쪽은 기억을 '숫자'에 새기고, 다른 쪽은 의미를 '요일'로 이어가고 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판단은 의미없다. 다만 우리는 왜 특정한 날을 쉬는가, 그 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돌아볼 따름이다. 기념일은 한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미래로 이어가려 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미국의 메모리얼데이와 머지 않은 날짜에 한국의 현충일이 있다. 우주와 같다는 한 생애를 국가와 민족에 바친 모든 영혼에 경의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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