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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에도 사람 냄새 나는 쪽방촌…동행목욕탕서 '행복한 수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쪽방촌 주민 사업 지원
서울시 '동행 사업' 주민들 만족도 높아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황춘희(가명,74) 할머니가 두 살 어린 최영식(가명,72) 할아버지 쪽방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설상미 기자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황춘희(가명,74) 할머니가 두 살 어린 최영식(가명,72) 할아버지 쪽방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설상미 기자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서울역 맞은편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63개동으로 이뤄져, 1200여 개의 쪽방이 있는 이곳에는 821명(2025년 1월 기준)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2평 미만 쪽방 시세는 대략 월 25만~35만 원. 언덕배기 중턱에 위치한 노숙인 이용시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주민들을 위한 맞춤 복지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영하 12도의 강추위로 서울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0일 밤 8시. 금요일인데도 서울역 쪽방촌상담소는 야근하는 직원들로 불이 환했다. 상담소 직원은 총 12명. 1명의 직원이 쪽방촌 주민 약 68명을 관리하는 셈이다.

18년간 서울역쪽방촌상담소에서 근무한 전익현 실장은 "어떨 때는 주민들이 800명, 어떨 때는 1000명이 되기도 한다. 유동인구가 굉장히 많은 편"이라며 "이따가 현장 순찰 다녀와서도 결재할 서류가 쌓여 있다"라며 웃어 보였다.

쪽방상담소가 순찰 시 제일 유심히 살피는 건 쪽방촌 내 화재 위험과 동파 여부다. 쪽방촌은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 안에 가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화재 발생 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상담소 관계자들은 한파주의보가 떨어진 날에는 어김없이 동네 순찰에 나선다. 전 실장은 "쪽방촌이 사유지인 만큼 관리에 한계가 있지만, 한파일 때는 동파를 비롯해 화재에 대비한 안전 점검 등 주민 보호를 위한 최대한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현 실장이 쪽방촌 내 화재 점검과 동파 여부를 살펴 보고 있다./설상미 기자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현 실장이 쪽방촌 내 화재 점검과 동파 여부를 살펴 보고 있다./설상미 기자

"눈은 좀 어떠세요. 의사 말 듣고, 꼭 수술 받으세요."

<더팩트> 취재진과 전 실장은 2시간가량 쪽방촌 일대를 돌며 주민들의 상태를 살폈다. 18년 베테랑인 만큼, 쪽방촌 주민들의 집 주소와 이름을 웬만큼 외우는 건 물론, 이들의 건강 상태와 내밀한 사정까지 꿰뚫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65세 이상의 고령자로, 밤늦게 찾아오는 손님도 반가워했다. 백민수(가명,76) 할아버지 집을 두드리면, 1m 앞 바로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우정환(가명,73) 할아버지의 집 문도 열리는 식. 전 실장이 눈이 아픈 우 씨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자, 그도 묵혀둔 고충을 쉽사리 털어냈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던 황춘희(가명,74) 할머니는 두 살 어린 최영식(가명,72) 할아버지 쪽방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취재진이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황 씨는 반달 눈으로 웃어보였다.

실제로 쪽방촌 주민들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은 일반인보다 높은 편이다. 지난해 9월 17일 한국행정연구원이 발간한 ‘사회통합실태조사로 살펴본 도심 주거취약계층의 빈곤과 온기’ 보고서에 따르면 쪽방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매우 그렇다’인 4점 만점 중 2.55점으로 나타났다. 일반 집단(1.76점)의 1.4배에 달하는 수치다.

자살 충동(1.68점)과 소외감(2.09점)도 일반 집단보다 1.3배 높아 정서적 고립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실장은 "일반인들은 의식주가 해결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주민들의 정서와 직결돼 있다"라며 "주민작가 전시회, 주민 나들이 등 정서 및 문화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정서적인 가난이 없도록 다방면으로 도와주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밝혔다. 상담소는 샤워실 및 세탁소 운영 등 생활 지원, 의료 지원과 같은 기본적인 지원 외에도 인문학 수업 및 디딤돌 문화 교실 등의 문화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한파엔 '동행 목욕탕' 인기

서울시는 이에 맞춰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대표 브랜드로 내걸고, 쪽방촌 주민들의 삶에 스며드는 동행 사업에 주력했다. 동행식당과 동행스토어(온기창고) 등이 대표적이다.

동행식당은 서울시가 민간 식당을 동행식당으로 지정한 뒤, 쪽방촌 주민들의 매일 하루 한 끼(8000원) 식사를 지원한다. 주민들은 동행식당에서 안부를 전하며 서로 돌보기도 한다. 돈의동 쪽방촌에 위치한 한 동행식당 대표는 "오시는 분들이 계속 오시니깐 주민분들 사정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온기창고에서는 주민들이 매달 적립되는 10만 포인트로 진열된 생필품을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이날 서울역쪽방촌 온기창고에도 햇반세트를 비롯해, 추어탕 밀키트, 황토냉온 찜질팩 등이 판매됐다. 쪽방촌 주민들이 주기 별로 돌아가면서 온기창고에서 근무해 일자리 창출 효과도 봤다. 온기창고 관계자는 "월요일 아침에는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라며 "주민 분들이 자주 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역쪽방촌의 밤추위대피소 중 하나인 은전사우나./설상미 기자
서울역쪽방촌의 밤추위대피소 중 하나인 은전사우나./설상미 기자

특히 쪽방촌 주민들 사이에서는 동행목욕탕 사업의 만족도가 높다. 앞서 서울시는 2023년 3월부터 동행목욕탕을 권역별로 지정해 날씨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제공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최대 월 4회 대중목욕탕 이용권을 제공받으며, 특히 한파철인 1~2월에는 밤추위 대피소로 해당 목욕탕을 매일 이용할 수 있다. 목욕뿐 아니라, 수면도 가능해 주민들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을 줄일 수 있다는 평가다.

서울역쪽방촌의 밤추위대피소 중 하나인 여성전용 은전사우나는 영업시간이 끝나면 쪽방촌 주민들을 받고 있다. 은전사우나를 찾은 한 60대 여성은 "추운 날 집에 있으면 적적하지 않나. 여기선 사람들이랑 수다 떨면서 같이 잘 수 있어 다들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12월 동행목욕탕 이용실적은 858명이고, 밤추위대피소는 70명"이라며 "주민 분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sno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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