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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베트남] 긴급 심야 회견 속 비친 북한의 '심경'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왼쪽) 외무상 부상이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숙소 멜리아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하노이(베트남)=AP/뉴시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왼쪽) 외무상 부상이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숙소 멜리아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하노이(베트남)=AP/뉴시스

최선희 "김정은 위원장, 협상 의욕 잃은 느낌"

[더팩트ㅣ하노이(베트남)=이원석·임세준 기자] 1일 자정을 넘긴 시각, 북한 측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긴급하게 전해졌다. 뛰면 약 5분 거리 호텔에 묵고 있던 <더팩트> 취재진도 다급하게 옷을 입고, 짐을 챙긴 뒤 멜리아 호텔로 뛰었다. 호텔 앞 통행 제한선에 도착했을 때 이미 30~40명의 취재진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대충 옷만 챙겨 입고 달려온 듯했다. 취재진은 헐떡이며 출입을 통제하는 공안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으나 단호하게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 시각, 멜리아 호텔 내부에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대부분의 취재진이 호텔 바로 앞에 있었지만 중계 화면으로 리 외무상의 기자회견을 지켜봐야 했다. 기자회견에 직접 들어간 우리나라 언론은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한국 기자들을 포함해 4개사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리 외무상은 전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와 관련 북한 측에선 미국 측에 부분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면서 "미국이 우리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게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귀국 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한 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리 외무상은 "미국이 UN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특히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린 연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 시설을 미국 전문가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했다"며 "우리가 요구한 건 전면적 제재 해제가 아닌 일부의 해제로 구체적으로 UN 제재 결의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이라고 말했다.

긴급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각국 취재진이 멜리아 호텔에 모여들고 있다. /하노이(베트남)=임세준 기자
긴급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각국 취재진이 멜리아 호텔에 모여들고 있다. /하노이(베트남)=임세준 기자

리 외무상은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 나가면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원래 안전 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 군사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보고 부분적 해제를 상응조치로 제기한 것"이라며 "이번 회담에서 우리는 미국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서 핵 시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단한다는 확약도 문서 형태로 줄 용의를 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회담 과정에서 미국 측은 영변시설 핵 폐기 조치 외에 한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며 "현 단계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겠는지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가 힘들다. 이런 기회마저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리 외무상은 "우리의 이런 원칙적 입장엔 추호도 변화가 없을 것이고,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제기해와도 우리 방안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밝혔다. 준비한 입장문을 모두 읽은 뒤 리 외무상은 취재진 질문은 받지 않고 퇴장했다.

긴급 기자회견은 전날 회담이 결렬된 뒤 약 12시간 만에 열린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회담이 합의사항 없이 종료된 뒤 숙소로 돌아와 '두분불출'했다. 김 위원장은 물론 수행단의 출입도 없었을 정도로 멜리아 호텔은 고요했다.

이 모든 상황을 통해 볼 때 회담 결렬에 대한 북한 측 분위기는 상당히 좋지 않았던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관계가 나쁘지 않다', '헤어질 때도 잘 헤어졌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해서 했지만, 북한 측은 상당히 심기 불편한 상태로 숙소로 돌아와 대응 방안을 고심한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봤을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북한이 완전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에 대해 반박 필요성을 느끼고 심야 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강력한 입장 표명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 부상이 리용호 외무상 기자회견 직후 백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하노이(베트남)=AP/뉴시스
최선희 북한 외무상 부상이 리용호 외무상 기자회견 직후 백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하노이(베트남)=AP/뉴시스

이날 퇴장한 리 외무상 대신 최선희 북한 외무상 부상이 취재진에게 간단한 백브리핑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최 부상은 리 외무상이 전한 입장을 다시 반복하면서 "이번에 제가 수뇌회담을 옆에서 보면서 우리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에서 하는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어하지 않았나, 이해 가지 않는 듯한 느낌 받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시기에 있지 않은 영변 핵 단지를 통째로 폐기할 데 대한 제안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제재 결의, 부분적인 결의까지 해제하기 어렵다는 미국의 반응을 보며 협상에 대한 의욕을 잃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표현한 것이다.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하던 북한과 미국 간 흐르는 분위기는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면서 강력한 입장 표명을 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들 전망이다. 여전히 북미가 대화의 여지를 남긴 것은 사실이나 각자의 요구사항에 대한 입장이 강경한 것은 서로 마찬가지다. 북한 측의 이런 반응에 미국 측이 어떻게 반응할지, 추후 북미, 남북 간의 대화 및 비핵화 조치 등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김 위원장은 오는 2일까지 베트남에 남아 주석과의 정상회담 등 '공식방문' 일정을 소화한 뒤 동당역을 통해 열차 편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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