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후' 회식 취재기, 기자 아니지 말입니다?
[더팩트ㅣ윤소희 인턴기자] "오늘 여기에서 고기 못 먹나요?" 처음 나선 현장에서 용기 내 꺼낸 말이었다. 고깃집을 취재하러 갔느냐고? 아니다. 007작전으로 진행된 화제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 극비 회식 현장을 취재하러 갔다.
지난 1일은 '태양의 후예' 주연배우 송중기 송혜교가 스태프를 위해 회식을 준비한 날이었다. 소속사가 보낸 보도자료에는 시간, 장소 어떤 정보도 없이 '오늘 회식'이라는 문구만 존재했다. 선배들은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더니 금세 시간과 장소를 알아냈다. 입사 면접 때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체력이요"라고 답했던 내게 '인맥'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막막하고 난해한 이 '인맥'에 대해 선배들은 '차곡 차곡 연차를 쌓으면 저절로 다져진다'고 말했다.
회식은 6시, 모든 이가 각자의 역할이 있는 꽉 짜인 일정에 한 선배와 동행취재 길에 오르게 됐다. 마음 같아선 처음부터 "제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힘차게 외치고 싶었지만 현실은 "저도…"라며 소심하게 나의 마음을 피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턴 기자는 바쁜 선배와 함께 사진팀 선배의 차를 얻어타고 첫 현장 취재, '태양의 후예' 회식 장소로 갈 수 있었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회식 장소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큰 길가에 있는 고깃집이었다. 그 사이 정보는 이미 공공연해진 듯 고깃집 앞에 큰 카메라를 든 여러 매체 사진 기자들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눈을 굴려가며 현장을 살폈다. 길을 지나가다 취재진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는 행인들이 나의 모습에 가까웠다. 인턴 기자에게는 너무 낯선 일들에 심장이 뛰었다.

사진팀 선배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데스크와 통화 후 회식 장소가 바뀌었다고 했다. 드라마 제작사와 배우들의 소속사는 짜기라도 한 듯 장소를 함구했지만 장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안팎의 여러 채널을 가동한 선배들의 노력으로 금방 확인됐다. 취재진은 동시다발적으로 또 다른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각 매체의 사인보드가 새겨진 취재차량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는 것 또한 신기했다. 어쩐지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선배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지만 모든 게 처음인 인턴 기자에게는 흥미로웠다. 바뀐 곳은 틀림없는 회식 장소였다. 기다림이 이어지고 새카맣게 선팅된 수십 대의 카니발과 레인지로버 차량이 지나가자 카메라 스트로보가 터졌다. 고깃집 입구를 살펴보니 장소를 변경한 것이 무색할 정도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고 어느덧 시간은 밤 아홉 시였다. 차에서 노트북을 꺼내 현장 분위기를 담은 기사를 작성했다. 그저 '비공개 회식이라 장소를 숨겼구나'라고 생각한 인턴기자에게 선배는 '철통보안 속 장소 변경 007 작전'이라고 기사의 방향을 잡아주셨다. 선배의 가이드 라인 제시 덕에 조금은 쉽게(절대 쉽지는 않다) 글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데스크로 넘어간 기사는 역시 또 수정이 필요했다. 현장 기사이기 때문에 현장감이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현장의 분위기를 살려보려 했지만 왜 이럴 때 내 머리는 아는 단어 하나 없이 하얗게 변해버리는지. 수정을 거친 기사는 데스크를 거쳐 또 한 번 수정돼 완전히 달라진 글로 세상에 나왔다.
출고된 기사를 서너 번 읽다 보니 긴장이 풀린 모양인지 화장실을 찾게 됐다.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가는 길,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김일병 김기범을 연기한 김민석이었다. 발길을 멈춰 소녀 팬들과 함께 그를 바라보던 중 그 뒤로 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날 회식의 주인공인 송중기였다. 홀린 듯이 다른 가게로 이동하는 그를 따라갔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인턴 기자란 점을 활용했다. 팬을 가장해 '지나가는 행인1'을 연기하며 모른 척 "저 사람 송중기예요?"라고 소녀 팬에게 물었다. 송중기의 등장에 어찌할 줄 모르던 소녀 팬은 저 사람은 송중기가 확실하고 송혜교는 원래 있던 장소에 그대로 있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인턴인 나를 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서 발생한 자신감(?)과 묘한 사명감(?)은 송혜교가 있다는 고깃집에 들어가는 당당한 걸음을 만들어줬다. '어쭙잖게 행동해선 안 돼!'라며 다독인 덕에 고깃집에 들어가는 내 표정은 나름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스태프인 척, 지인을 찾는 척 고깃집을 돌아다니던 내게 의아한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아 심장이 뛰었다. 그쯤 가게 가장 안쪽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 송혜교를 찾아냈다. 송혜교의 위치를 파악한 것까진 좋았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인턴 기자의 시나리오가 딱 거기까지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덩그러니 서서 10초 동안 머리를 굴렸다. 온통 머릿속에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가득했고 돌파구를 찾다 가게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여기에서 고기 못 먹나요?". '고깃집 손님1'을 연기하는 나를 보는 직원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여기 일행 아니세요?"라고 되물었다. 뭔가 잘못됐음을 인지한 나와 직원은 서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과는 강제 퇴장이었다. 들어갈 때의 패기와 상반되는 초라한 모습으로 말이다. 인턴기자는 첫 잠입을 반 토막의 시나리오로 딱 절반만큼 성공했고 실패했다. 처음 나간 현장 취재에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순발력이었다. 기사를 작성할 때 빠르게 주제와 글을 방향을 찾아내는 센스와 어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빠르게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행인1'과 '손님1'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에 뻔뻔함까지 더해지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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