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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비하인드] '무한~도전' 이호열 "157등에서 명문대 교수로"

오는 4·13 총선에서 부산 사하을에 출마한 이호열 예비후보는 '화려한 이력' 뒤엔 늘 '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이 예비부호가 유세 일정을 정리하고 있다./부산 사하을=배정한 기자
오는 4·13 총선에서 부산 사하을에 출마한 이호열 예비후보는 '화려한 이력' 뒤엔 늘 '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이 예비부호가 유세 일정을 정리하고 있다./부산 사하을=배정한 기자

[더팩트 | 부산 사하을=오경희 기자] 이호열(54) 부산 사하을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이번에도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탈당'이란 잡음은 있어도 현역인 조경태 의원은 야당 간판을 내걸고 사하을에서 3선을 지냈다. 정치 신인으로서 쉬운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예비후보는 이번에도 '승부'를 걸었다.

'베스트셀러 저자''고려대 대학원 교수' 등 화려한 이력 뒤엔 늘 "도전하는 삶이 있었다"는 게 아내 오승연 전 SBS 아나운서(40, 고려대 교수)의 얘기다.

이 예비후보는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감천동 판잣집에서 6.25 참전 1급 상이용사의 4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물장사와 연탄배달을 하는 등 소년가장 역할을 했다. 두 눈을 잃은 아버지는 후유증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저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 제 이름이 '이호열'이란 걸 알았어요. 어른들이 '바우(바위)'라고 불렀으니까요. 그럴 정도로 부모님은 자식들 교육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죠."

인생의 첫 도전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중학교 태권도 유망주였던 그의 성적은 전교 157등이었다. 운동을 하느라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공부를 결심했다.

"진짜 모험이었죠. 157등이 공부라니. 운동선수로의 길을 가면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가정을 세우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열심히 공부를 했고 1년여 만에 졸업할 때까지 한자리 등수를 만들었죠. 운동할때 체력과 집중력을 길렀던 게 도움이 됐어요."

이 예비후보의 인생 앨범./이호열 예비후보 블로그
이 예비후보의 인생 앨범./이호열 예비후보 블로그

대학도 재도전 끝에 들어갔다. 그는 "고 3때 학생회 활동을 하는 것은 금기죠. 주변에서 다 말렸어요.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전 해보고 싶었어요. 초등학교나 중학교때는 치맛바람이 없어서 반장을 한 번도 못했거든요. 결국 총학생회장에 당선됐죠. 리더십도 키웠고 좋은 추억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대학에 못 들어가고 재수해서 고대 법대에 들어갔죠"라고 웃었다.

가장 무모한 도전은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법대생이던 그는 호기롭게 영어 강의를 맡았다. 처음엔 무작정 출판사에 강의 자리를 달라고 했다.

"사법시험을 공부하려니 책값이 없잖아요. 제 전공이 영어도 아니고 외국에 나가 본적도 없으니 강의 자리를 안 주죠. 그때 친구들하고 술 한잔하면서 '출판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재목인데 인재를 몰라보고 저렇게 거절하냐'고 말했더니 친구들이 '너 정신 나갔냐'라고 하더라고요. 하하하하."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한 출판사에서 그에게 영어 강의를 요청했다. 갑자기 한 대학의 강사 자리가 빈 것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단어 특강을 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아는 단어가 몇 개 일까를 생각해보니 많지가 않잖아요? 그런데도 과감하게 도전을 한거죠."

몇 년쯤 흘렀을까. 대학 사법시험 강사로도 입소문이 나자 그를 거절했던 출판사는 출판 제의를 했다. 그 책이 바로 1996년 펴낸 '아카데미 토플'이다. 당시 이 책은 대학생들의 바이블로 통할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다.

대학 졸업 후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법학석사, 법학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언론대학원 교수가 됐다. 이후 MBC, SBS 등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MC로 활동했다.

이 예비후보(왼쪽)와 아내 오승연 아나운서./이호열 예비후보 제공
이 예비후보(왼쪽)와 아내 오승연 아나운서./이호열 예비후보 제공

교수 역시 쉽게 오르지 않았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교수가 안 됐다. 왜냐하면, 제 전공이 지적재산권법인데 당시 그거를 필요한 대학도 없었고 학자도 없었다. 너무 앞서간 거죠"라면서 7년간 신설 대학에서 근무한 뒤 고려대로 옮겨 강단에 섰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오 아나운서는 "남편은 정말 달걀로 바위치기 같은 삶을 살았어요. 제가 남편을 사랑해서이기도 하지만 요즘 주변에서 다들 개천에 용은 못 나는 세상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사회 풍토가 가슴 아프죠"라고 말했다.

또다시 '도전'에 나선 이 예비후보는 "정치인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명분을 가지고 갔을 때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 하고 말고 대충 끝내는 게 아니"라며 각오를 다졌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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