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또 올림픽을 열 모양이다. 1940년 제 12회 하계 대회와 그해 제 5회 동계 대회를 각각 도쿄와 삿포로에 유치했지만 스스로 일으킨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제 2차 세계대전)으로 대회를 치르지 못했던 일본은 1964년과 1972년 제 18회 하계 대회와 제 11회 동계 대회를 도쿄와 삿포로에서 개최했다. 1998년에는 제 18회 동계 대회를 나가노에서 열었다.
도쿄에서는 2020년 제 32회 하계 대회가 펼쳐진다. 도쿄는 지난해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 125차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이스탄불(터키)과 마드리드(스페인)를 힘들이지 않고 누르고 개최권을 차지했다. 원전 문제 등 여러 우려 속에 56년 만에 다시 하계 올림픽이 일본에서 열리게 된다. 그리고 동계 올림픽이 28년 만에 다시 일본에서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욕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왠지 밉상스럽다.
일본 지지통신은 우에다 후미오 삿포로 시장이 2026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정식으로 밝혔다고 27일 보도했다. 우에다 시장은 "올림픽은 많은 시민이 꿈을 함께 갖고 큰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동계 올림픽 개최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동계 스포츠 발전과 일본 전체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에다 시장은 재정 부담에도 2026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고 삿포로시는 지난달 시민 1만 명을 대상으로 올림픽 유치 도전 여부를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해 66.7%의 찬성을 이끌어 냈다. 시의회에서는 올림픽 유치에 도전하겠다는 의안을 통과시켰다. 올림픽 유치의 기본 요건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삿포로가 2026년 동계 올림픽을 유치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먼저 국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일본올림픽위원회는 2016년에 동계 올림픽 국내 후보 도시를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나가노 등 겨울철 스포츠 시설이 삿포로에 못지않은 도시가 경쟁자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2026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는 2019년 제 132차 IOC 총회(개최지 미정)에서 결정된다. 이때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은 끝났고 2022년 제 24회 동계 대회 개최지가 결정돼 있다. 2022년 대회는 내년에 쿠알라룸프르(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제 126차 IOC 총회에서 결정되는데 후보 도시는 베이징(중국)과 알마티(카자흐스탄)다.
2018년부터 시작해 2020년, 2022년 등 동·하계 올림픽이 잇따라 아시아에서 벌어진다. 2024년 하계 대회는 도하(카타르)가 잠재적 후보 도시이긴 하지만 아시아 지역이 아닌 곳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대륙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삿포로의 도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2020년 하계 대회가 도쿄로 결정되면서 부산은 2024년 제 33회 하계 대회 유치를 포기했고 2028년 제 34회 대회(2021년 제 133차 IOC 총회에서 개최지 결정) 유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도 열리지 않았던 1972년, 삿포로는 어떻게 동계 올림픽을 치렀을까.
이 대회의 유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59년 뮌헨(당시 서독)에서 열린 제 55차 IOC 총회에서 도쿄가 1964년 제 18회 하계 대회 개최지로 결정되자 일본 체육계에서는 내처 동계 올림픽도 유치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은 삿포로를 개최지로 해 1968년 제 10회 동계 올림픽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때 경쟁 도시는 그르노블(프랑스)과 캘거리(캐나다), 라피(핀란드), 오슬로(노르웨이), 레이크플래시드(미국) 등이었다. 1964년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제 61차 IOC 총회에서 삿포로는 1차 투표에서 51표 가운데 6표를 얻어 4위에 그치며 일찌감치 탈락했다. 3차 투표까지 가는 경쟁 끝에 그르노블이 캘거리를 27-24로 제치고 개최지로 결정됐다.
일본은 곧이어 1972년에 열릴 제 11회 동계 대회 유치 작업에 들어갔다. 제 11회 동계 대회 개최지 결정은 1964년 로마에서 열린 제 64차 IOC 총회에서 이뤄졌다. 이때 경쟁한 도시는 삿포로 외에 밴푸(캐나다)와 솔트레이크시티(미국), 라피였다. 삿포로는 1차 투표에서 61명의 IOC 위원 가운데 32명의 지지를 받아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자기 탓이긴 하지만 1940년 대회를 열지 못한 한을 풀었다.
일본은 삿포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고속도로를 새로 닦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등 6천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1972년 2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린 대회에는 35개국 1천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했고 한국은 임원 2명과 선수 5명(피겨스케이팅 여자 1명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명 여자 3명)의 소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 북한은 스피드스케이팅에 여자 선수 6명을 보냈다.
이 대회를 치르며 한국은 동계 종목에서 또다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지만 한 줄기 희망을 빛을 보기도 했다.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한 장명수는 14개국 19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꼴찌를 했다. 실내 링크는 이제는 어디에 있었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동대문실내빙상장, 달랑 하나 뿐이고 정빙차(整氷車)도 도입되기 전이니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 무렵 한국을 찾았던 윌리스(여자, 이름 불명)라는 피겨스케이팅 국제 심판이 특별한 코멘트를 한 내용이 <대한체육회 70년사>에 실려 있다.
윌리스는 "한국인들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소질 그리고 표현력의 장점을 살리고 외국의 기술과 훈련 방법을 도입한다면 상위권 진입이 가능하다"고 전망하면서 "국제 경기, 특히 세계선수권대회에 해마다 출전해 한국에서도 피겨스케이팅 열기가 뜨겁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선행 조건이다"고 조언했다.
2010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 21회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을 따기 38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표현력이 뛰어난 김연아를 기막히게 예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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