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연 기자] "제대로 살고 있냐?"
영화감독 장진(44)은 산만하다. 그리고 피곤하다. 바쁘게 사는 그를 마주한 첫 느낌이다. 정신없는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이거(휴대전화)에 신경 쓰지 마라. 습관이다"며 마른 한숨을 짓는 그를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팔판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이 직접 마주했다.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린 그에게 "신경이 쓰인다"며 쏘아붙였다. 머쓱한 표정을 짓던 장진은 이내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어 보인다. 최근 영화 '하이힐' 홍보부터 '우리는 형제입니다' 촬영, 인천 아시안게임 무대연출까지 숨 막히는 일정을 소화하는 그였기에 산만할 수 밖에 없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 장진의 직업은 하나, '이야기꾼'

장진을 별명은 '문화 게릴라'다. 지난 1996년 단편 '영웅들의 수다'로 입봉한 이후 연극 영화 TV프로그램 등 편식없이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활동했다. 그에게 '문화 게릴라'는 꽤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욕심이 많은 건지 진득함이 없는 천성때문인지 '팔방미인'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둘 다 틀렸어요. 나한텐 연극-영화-TV 모두 하나의 공간일 뿐이에요(웃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법에 따라 장소를 선택하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기에 적합하다 싶으면 거기로 가는 거죠. 그래서 내겐 '문화 게릴라'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요(웃음). 난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무대'에 풀어 놓을 뿐인데?"

'이야기꾼' 장진은 6년 만에 동료이자 배우인 차승원을 선택해 스크린을 통해 또 한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놨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하이힐'(감독 장진, 제작 장차앤코,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이다.
장진은 '마초' 차승원과 누아르란 장르를 정면에 내세워 퀴어시네마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하이힐'은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긴 채 살아온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 분)이 트랜스젠더로 새 삶을 살고자 하는 내용을 담았다. 장진 특유의 감성과 차승원의 시원한 액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장을 할 수 있는 강력한 '마초'가 필요했어요. 여성스러운 남자배우가 트랜스젠더가 되려 한다면 재미없지 않나요? 차승원 씨의 여장이 굉장히 충격이었지만, 그럼에도 웃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래서 더 처절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죠. 사실 '하이힐'은 차승원 씨에게 고마운 작품이에요. 덕분에 진득하게 촬영할 수 있었거든요. 좋게 말하면 그렇고 솔직히 말하면 독하게 찍었어요(웃음). 영화 질감에서도 거친 부분이 느껴질 거에요. 둘이서 촬영하기 전에 무언가에 질리고 있단 기분을 느꼈어요. 그래서 '하나에 집중하자', '미친 듯 촬영하자' 다짐하고 작업했거든요."

항상 독특한 발상과 색다른 주제의 이야기로 대중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장진은 차승원을 통해 트랜스젠더라는 소재를 꺼내 들었다. 이유를 묻자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와서"라고 말한다.
"주위에 '여자'인 친구들이 많아요(장진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항상 익숙하게 우리 곁에 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SNL 코리아'로 정치적인 풍자를 했던 시기도 있었죠. 혹자는 제가 지금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늙었다 하더군요(웃음). 스스로 진보가 되려고 혹은 보수가 되려고 노력한 적 있나요? 요즘 시대는 극단적으로 양분화돼서 서로서로를 할퀴는 것에 익숙해 졌어요. 잔인한 것에 피로함을 느껴요. 제가 요즘 눈을 돌린 부분은 이념을 떠나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이야기 하지 않았던 다른 부분이에요."
◆ 20대 장진이 40대 장진에게 묻습니다 "잘 가고 있냐"

장진의 '하이힐' 홍보 일정도 인터뷰가 끝이다. 하반기 개봉이 예정된 '우리는 형제입니다' 또한 최근 촬영을 모두 마쳤다. 바쁘게 달려온 '피곤한' 그에게 꿀맛 같은 휴식이 기다리나 싶었는데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무대 총연출을 맡았단다.
"내가 미친 거지(웃음). 그런데 거절할 수 없었어요. 아시안게임 총연출은 무대 연출을 하는 사람에겐 '꿈의 무대'같은 공간이거든. 어떻게 거절해요. 그런 자리를 덕분에 개막식이 있는 10월 4일까진 쉴 새 없이 일해야 해요. 다음엔 '천재지변'에 맡기는 거죠. 아무리 멋진 무대를 만들어도 그날 날씨가 '꽝'이면 말짱 도루묵이거든(웃음). 그게 정말 재밌고 스릴있는거죠."

장진은 자신의 빡빡한 스케줄을 되뇌며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과 쾌활한 목소리는 그가 자신의 '무대'를 오롯이 즐기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에게서 20대 젊은이의 열정 못지 않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창의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내공'이 생기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내 경우에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심해야 하는 게 분명히 있어요. '너 왜 이렇게 변했냐?'라는 말을 들으면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봐야 하죠. 예전보다 분명히 잘돼 있을 때 그런 소리를 들어요. '하이힐'을 만들면서도 차승원 씨랑 '쉽게 가지 말자' '이 판(영화계)에 익숙해지지 말자'를 수없이 외쳤어요."

40대 장진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20대 장진'이 예상했던, 꿈꿨던 '40대 장진'이 맞느냐고. 그는 깔깔 웃으며 "난 이런 거 닭살스러워 대답 못 한다"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생각에 잠긴 그는 혼잣말인지 대답인지 모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음, 너 잘 가고 있냐? 분명 20대 장진이 생각했던 40대 장진은 열정이 넘치고 모험을 좋아하는 아저씨였는데 말야(웃음). 요즘따라 가치있는 것들, 가치 없는 것들, 조직과 사회에 대해 생각하면서 힘이 빠질 때가 있는데…. 잘 버팁시다. 그 안에서 스스로 명분을 만들고 뭔가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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