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현동=김아름 인턴기자] 지난 28일 전라남도 장성에선 80대 치매 노인의 방화로 8명이 다치고 21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전 10시 54분쯤엔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을 지나던 전동차 객실에서 60대 남성이 불을 질러 객실 안 200여 명의 승객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8년 10월 20일 오전,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 서울 도심지 한가운데서 발생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사회 부적응자의 계획된 방화·살인사건으로 사망자 6명을 포함해 무려 13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거나 다치는 등 믿기 어려운 참극이 벌어졌다.
당시 방화살인범은 라이터용 기름과 라이터를 준비해 자신의 방에 불을 냈으며 이후 복도에서 화재연기를 피해 탈출하는 피해자들을 기다렸다가 미리 준비한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 결과 고시원 3층 일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탔으며 중국동포 이모(당시 50세)씨를 포함해 서모(20)씨 등 6명이 숨졌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참극이 벌어졌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 현장을 29일 오후 <더팩트>이 찾았다.

◆ 2008년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현장, 지금은…사우나 등 상가 입점
한여름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서울의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며 뜨거운 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함인지 거리엔 사람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취재진은 영동시장 인근 상인들의 안내로 6년 전 고시원이 있던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처음 취재진은 한 상인에게 '2008년에 발생한 화재 사고 고시원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 상인은 "화재? 어떤…아, 기억났다. 농협 건너편에 있는 건물을 말하는 것 아니느냐"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 농협 건너편에 그 건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상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느새 취재진의 이마에는 더운 열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농협 앞에 다다르자 당시 고시원 건물과 언론을 통해 보였던 편의점 등 인근 상가가 눈에 보였다.

화재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5층 높이의 건물은 6년이 지난 현재 '고시원이 있었던 건물이 맞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해당 건물에는 음식점과 사우나, 노래방 등 여러 입간판이 설치돼 있었으며 연신 건물 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건물이 (사고가 발생한 고시원) 맞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주변 상인들에게 당시 상황과 주변 분위기 등을 물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들에게 6년 전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잊힌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한 인근 상가 주인은 "(논현동 방화 살인사건으로)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긴 했으나 이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며 "사실 (해당 건물이) 이후에 고시원을 계속 했는지 여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대답했다.
또 사고를 목격했던 한 부동산 관계자는 "(고시원 화재사고 이후) 고시원은 바로 사라지고 얼마 안 돼서 사우나가 들어왔다"며 "(강남 논현동은) 못 들어와서 안달일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곳인데 누가 화재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겠느냐.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그렇다고 이곳 상권이 타격을 입거나 하는 것은 없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어떤 사건 ·사고든지) 발생할 때나 시끄럽지 시간 지나면 결국 잊히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예상했던 반응과 너무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취재진은 '그래도 (세월호 참사 등) 최근 사건·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면 생각은 나지 않겠느냐'며 '안전에 대해 경각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으냐'고 재차 물었다.
그는 "이제 얼마 안 가 (세월호 참사나 장성병원 화재 등) 기억 속에 희미해질 것이다"고 고개를 저었다.

◆ 피해자 가족, 극심한 우울증과 경제난에 시달려
취재진은 화재 살인사건 현장 주변 상인들이 아닌 당시 피해자 가족과 연결을 시도했다.
취재진과 연결이 된 피해자 가족은 이 사건(논현동 고시원 방화)으로 딸을 잃은 서병호(55)씨로 그는 현재 범죄피해자협의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현재 (딸의 죽음 이후) 정신적·경제적으로 파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하고 싶은 충동까지 인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비슷한 사건, 사고가 발생해 세상이 떠들썩해도) 늘 그때뿐이지 몇 달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 그 사건은 하나의 소동으로 잊혀진다. 그렇다 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고 속상하다는 표현도 하지 못한다"며 "매일 밤을 눈물과 술로 지샌다"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딸을 잃기 전 단란한 가정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는 서씨는 이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부터 일식집을 운영했다고 밝히며 "(사고 이후) 요리하기 위해 칼을 들 때마다 딸이 생각나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내가 쥐고 있는 이 칼이 (범인이) 내 딸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그는 그동안의 고통을 쏟아내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난달 3월에 안양에서 피해자 아버지가 자살했다. 그도 평소 딸의 죽음으로 굉장히 괴로워했었다"며 "제2, 3의 피해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도 바로 잡혀야 할 것이고,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사회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현재 대부분 피해자 가족들은 정부와 사람들에 잊혀지고 소외돼 그 모든 아픔과 고통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단란했던 가정이 무너졌다는 상실감에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 대인공포증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월 초, 2008년 안양 초등학생 살인사건으로 막내딸 혜진 양을 잃은 아버지 이창근 씨가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 생활하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해 충격을 줬다.
안양 초등학생 살인사건은 당시 9살, 11살이던 초등학생 이혜진 양과 우예슬 양이 범인 정성현에게 유괴된 뒤 살해당한 사건으로 실종 77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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