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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주먹] ① '핵주먹' 타이슨, 스치기만 해도 'KO!' (영상)





한 시대를 풍미한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 마이크 타이슨 홈페이지
한 시대를 풍미한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 마이크 타이슨 홈페이지

격투기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UFC를 비롯해 '낭만 주먹'들의 사랑과 의리를 담은 드라마 '감격시대'까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전설의 파이터'들이 떠오르는 요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 탓에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있지만, 그들이 남긴 명장면들은 여전히 기억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이따끔씩 그 시절의 '추억'을 회상할 때면, 어깨가 절로 들썩이고, 삼삼오오 모인 술 자리에선 그들의 명승부가 최고의 안줏거리를 대신 하기도 한다. 파이터의 혼이 실린 펀치와 킥 등이 지금까지 팬들에게 쾌감과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팩트>은 누군가의 영웅이자, 꿈이기도 했던 파이터들의 이야기를 '전설의 주먹' 코너를 통해 다시 꺼내본다. <편집자 주>

[신원엽 기자] '전설의 주먹' 코너의 첫 번째 초대손님은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47)이다. 1980~1990년대 세계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그는 '신이 빚은 복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스치기만 해도 KO!'라는 유행어를 낳을 정도로 그의 주먹은 그야말로 무시무시 했다. 난잡한 사생활과 좋지 못한 경기 매너 등으로 구설에 자주 올랐던 그였지만, 전성기에 보여줬던 '한방'은 아직도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1990년 대 타이슨의 위상은 정말 대단했다. / 타이슨 홈페이지
1980~1990년 대 타이슨의 위상은 정말 대단했다. / 타이슨 홈페이지

◆ '핵주먹'의 탄생…알리와 만남

1966년 6월 30일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타이슨은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2살 때 아버지의 지병으로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머지 않아 집을 떠난 아버지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1982년이나 돼서야 돌아왔다.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몸집이 작았던 타이슨은 외톨이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살던 집에는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았고 난방도 되지 않았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작고 소심한 성격을 가지게 됐던 타이슨이 '복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건 다소 엉뚱한 사건 때문이었다. 어느날 자신이 돌보던 비둘기가 동네 불량배에게 죽임을 당하자, '소년 타이슨'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불량배에게 '미래의 핵주먹'을 날렸다. 숨겨진 재능을 발결한 순간이다. 그는 11살 때 소매치기 등 난폭자의 길을 걸으며 소년원에 입감되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어느날 방문한 '전설' 무하마드 알리의 위상을 보고 '복서의 꿈'을 키웠다. 자신의 롤 모델을 '알리'로 삼은 타이슨은 출소 후 재입학한 학교의 카운셀러이자 전미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인 바비 스튜어트의 지도를 받으며 복싱 선수로 성장한다.

◆ 세계 최강의 사나이가 되다!

타이슨은 1985년 3월 6일 헥토르 메르세데스라와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화끈한 1회 KO승. 이후 연전연승 연속 KO 행진을 이어갔다. 19연속 경기 KO승과 함께 '미래의 챔피언'으로 각광을 받았다. 19연속 KO승 가운데 무려 11번이 1회에 만들어졌고, 6회 KO승이 가장 길게 치른 경기였다. 난공불락의 타이슨은 1986년 9월 22일 트레버 버빅을 2회 KO로 눕히며 드디어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헤비급 사상 최연소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그의 주먹이 상대 안면을 강타하면 팬들은 열광했고, 상대 선수는 곧바로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핵주먹'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그의 위력적인 펀치 앞엔 결코 적수가 없어 보였다. 1990년까지 37전 37승 33KO라는 엄청난 전적으로 무패 행진을 이어간 타이슨이다.

◆ 더글라스전 패배와 몰락

1990년 2월. 타이슨은 일본 도쿄에서 펼친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서 무명의 복서 제임스 더글라스에게 예기치 못한 10회 KO패를 당했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타이슨의 일방적인 승리를 점쳤다. 다소 고전했지만 타이슨은 8회 한 차례 다운를 뺏앗으며 승기를 잡는가 싶었다. 하지만 운명의 10회에 무너졌다. 체력이 떨어진 타이슨은 더글라스에게 레프트-라이트 연타를 허용하며 KO패를 당했다. 프로 데뷔 후 첫 패배. 이 경기는 2009년 폭스 스포츠가 꼽은 역대 개인종목 최대 이변 톱10 가운데 1위에 오를 정도로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후 타이슨은 1991년 흑인 미인 선발대회에 참가한 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3년여 동안 감옥 생활을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게 된다.

*타이슨-더글라스전 영상(http://youtu.be/gi9Ufhe0Uf0)

◆ '핵이빨'로 전락한 복싱천재

타이슨은 1995년 복귀한 뒤 다시 챔피언 타이틀을 하나씩 되찾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1996년 11월 에반더 홀리필더에게 11회 KO로 지면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1997년 6월 홀리필더와 재대결을 펼친 그는 홀리필더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자제력을 잃고 그 유명한 '핵이빨' 사건을 일으켰다. 복싱 경기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그는 선수 자격 정지를 받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된 타이슨은 이후 폭행과 성추행 혐의 등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며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1999년 다시 링으로 돌아온 그는 재기전에 나섰으나 연패에 빠지는 등 부진을 거듭했고, 2005년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지고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50승(44KO) 6패 2무효의 전적을 남기고 글러브를 벗었다.

◆ 타이슨의 '완벽 펀치'의 비결은?

타이슨은 은퇴 후 레슬러와 배우 등 다양한 삶을 살며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말 영국 언론 등과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까지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제 깨끗하게 살고 있다. 인생은 짧다.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란다"며 지난날 성폭행과 마약 복용, 파산 신청 등 방탕한 생활을 후회했다. 지금은 매우 초라해진 타이슨이지만, 전성기 시절 그가 보여준 '핵주먹'의 위력은 아직도 '역대 최강'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직도 타이슨을 두고 '완벽한 펀치를 구사했던 선수'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타이슨의 '완벽 펀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타이슨은 전성기에 힘도 힘이지만, 뛰어난 스피드로 도전자들을 때려 눕혀 왔다고 입을 모은다. 격투 스포츠의 기본인 스피드가 뛰어났기에 '핵주먹'이 가동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과거 미국의 복싱 전문가 그래험 휴스턴은 "타이슨은 첫 6라운드 동안 가장 강력한 선수다. 스피드와 파워를 겸비한 그는 상대가 의도를 알아채기 전 타격 지점으로 이동해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고 설명했다.

◆ '영상' 타이슨의 녹아웃 '베스트'(http://youtu.be/AIfb5uerVpw)

wannabe2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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