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자키 칼럼니스트] 생각보다 '그때 그 경기'를 떠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도하의 비극' 20주년을 맞이했을 때다. 일본스포츠 전문지 중 최고 권위를 지녔다는 '넘버'가 20주년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타 매체들도 당시 화보를 엮어 보도했다. 당일 일본 최대포털사이트인 '야후 재팬' 스포츠섹션에서 '도하의 비극'을 주제로 한 기사가 많이 본 뉴스 1~3위를 차지했다.
1993년 10월 26일.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5차전인 일본과 이라크전. 일본은 후반 추가 시간에 동점 골을 내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글쓴이는 메신저로 한국 친구들과 월드컵 예선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하의 비극'에 대한 한일간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본 입장에서 '도하의 비극'을 떠올려본다. 20년 전 글쓴이는 재수생이었다. 월드컵 예선이 열린 카타르에 가지 못했다. 그래도 열성 팬을 자처하며 집에서 중계방송에 몰두했다. "1990년대 한일전이 참 재미있었지?"라고 말하는 한국축구기자의 생각이 떠올려진다. 맞다. 당시 일본은 김주성과 노정윤, 홍명보가 뛰고 김호 감독이 이끈 한국을 1-0으로 이겼다. 물론 경기를 편하게 본 건 아니었다. 즐길 여유가 없었다.
일본은 1993년 10월 25일 열린 한일전에 앞서 이미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우디와 0-0으로 비겼고 이란엔 1-2로 졌다. 북한엔 3-0으로 이겼으나 '강적' 한국을 만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이겼으나 '도하의 비극' 출발점은 앞선 사우디, 이란전에 있었다. 20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첫 경기를 무승부로 마친 게 무난해 보인다. 그러나 팬 입장에서 바라봤을 땐 '우리는 아시아 정상급의 팀인데, 왜 이기지 못했을까?'라는 생각뿐이다. 1992년 히로시마 아시안컵에서 첫 우승을 이룬 일본으로선 '미숙한 왕'이었다. 즉,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나간 경험이 없음에도 '우리는 챔피언'이니까 압도적인 승리로 예선을 통과할 것으로 여긴 것이다. 예선이 열리는 장소가 중동이라는 점은 온데간데없었다.
초반 두 경기를 실패한 뒤 북한전을 앞두고 오프트 전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나머지 북한, 한국, 이라크전을 모두 이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이기더라도 한국과 경기는 '토너먼트 승부'와 같았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승리가 필요했으니까. 한국은 이겨야 하는 상대였으나 '라이벌'은 아니었다. 일본엔 한 수 위의 팀이었다. 물론 1992년 다이너스티컵과 히로시마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본이지만, 다수 팬은 '혹시나 잡을 수 있을까?'하고 조심스러워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한국을 떠올리기에 앞서 '지면 본선진출은 물 건너간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래서 경기 내용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단, 결승골 장면에서 미우라 가즈요시가 문전에서 흐르는 공을 툭 차넣어 '역시 스트라이커'라고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나흘 뒤 이라크와 1-1로 비겨 일본은 승점 6, 골득실 +7로 3위를 기록하며 예선 탈락했다. 한국(승점 6·골득실 +9)과 승점은 같았으나 골득실에서 밀렸다.

20년이 지나 여유 있게 당시 비극을 살펴보게 됐다. 오히려 한일전을 이기지 않았다면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한국전을 기점으로 자신감을 가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직전 아시아 대회를 우승한 일본이 스스로 '아시아의 왕'이라고 자부한 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이 1992 히로시마 아시안컵 본선에 나와 일본의 우승을 저지했다면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이 좀 더 '도전자' 자세로 나서야 했다. 하긴, 당시 한국은 1992 히로시마 아시안컵 타이에서 열린 예선전에서 실업선발팀을 내보냈다가 태국에 졌다. (당시 한국은 아시안컵에 대한 중요도가 낮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일본 축구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도하의 비극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라크전, 그 순간에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사우디, 이란전 두 경기와 1992 히로시마 아시안컵 우승 이후 들뜬 분위기가 컸다. 전력으로 봤을 때도 왼쪽 수비수 츠나미 사토시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미우라에 이어 공격의 주력 선수로 주목받은 후쿠다 마사히로의 부진도 있었다. 또한, 이라크전에선 경험 부족도 보였다. 1-0으로 앞선 채 하프타임을 맞았는데, 월드컵 진출이 눈에 보인 선수들이 흥분한 나머지 감독의 지시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 한다. 선수들끼리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오프트 감독은 세 차례나 "입 닥치라(Shut up)"라고 외쳤다고 고백했다.
P.S - 가끔 그립기도 하다. 긴장이 넘치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지금도 긴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몸을 던지고 투지 넘치는 '스릴'을 다시 맛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이라크전 중계방송이 끝난 뒤 일어난 해프닝도 기억난다. '도하의 비극' 이후 위성방송으로 한국과 북한의 녹화중계가 이어졌다. 사전에 찍은 경기 영상을 생방송으로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중계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해설을 맡은 하시라다니 코이치(현 J2기타큐슈감독)은 중계를 앞두고 "솔직히 방송할 기분이 아니다. 그러나 이 방송을 기다리는 일본 팬도 있으니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해설자가 해설하기 싫다니! 이 발언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 요시자키 에이지 소개

1974년생 기타큐슈 출신 축구 전문 프리랜서 기자.
오사카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졸업.
주간 사커매가진 한국소식 코너 담당(11년).
스포츠지 '넘버'에서 칼럼 연재(7년)
최근에는 축구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정치, 북한사정등 글 쓰기도 한다. 박지성 "나를 버리다", "홍명보의 미라클" 등을 번역, 일본에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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