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열린 KIA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를 끝으로 반세기 역사의 광주 무등야구장에서는 프로 야구 경기를 볼 수 없다. 내년 시즌부터 KIA의 홈 경기는 무등야구장 바로 옆 축구장 자리에 지은 새 야구장에서 열린다. 해태 타이거즈의 신화가 살아 있는 무등야구장은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어떻게 처리될지 결정된다. 어떤 형태가 됐든 무등야구장의 숨결은 새 야구장이 이어 간다. 완전히 사라진 서울 동대문야구장과 비교된다.
스포츠 팬들에게 경기장은 선수 이상으로 많은 추억을 남긴다. 글쓴이에게 무등야구장의 추억은 프로 야구가 출범한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3일 무등야구장에서는 프로 야구 올스타 2차전이 펼쳐졌다. 김용철(롯데 자이언츠)이 3점 홈런 등 5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두른 동군이 서군을 11-6으로 물리쳐 1차전 1-5 패배를 갚았다. 프로 야구 첫해 올스타전은 3차례 열렸다. 해태 경기가 아니었기에 긴박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3년 10월 15일 해태-MBC 청룡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무둥야구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선선한 가을 날씨였지만 무둥야구장의 열기는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해태 선발 이상윤이 1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1회 말 해태 공격. 선두 타자 김일권의 안타와 2번 타자 김일환의 볼넷으로 무사 1, 2루. 3번 타자 김성한의 타격 때 배트가 부러지면서 타구와 함께 3루 쪽으로 날아갔다. MBC 3루수 이광은은 배트 조각을 피하려다 타구를 놓쳤고 주자가 모두 살면서 무사 만루. MBC 선발투수 오영일은 4번 타자 김봉연을 삼진으로 잡아 한숨을 돌리는 듯했지만 5번 타자 김종모의 타구가 3루 베이스를 맞고 방향이 바뀌면서 2루타가 돼 2-0.
이때 무등야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이 선제 득점은 1983년 한국시리즈의 향방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후기 리그 보너스 문제 등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진 MBC는 해태의 무서운 기세에 밀려 1무4패로 맥없이 물러섰다.
1986년과 1987년 해태와 삼성 라이온즈가 연속으로 맞붙은 한국시리즈도 무등야구장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경기 도중 무등야구장 본부석에 앉아 MBC 중계방송에 출연한 일도 글쓴이에게는 특별한 추억이다.
무등야구장이 광주 팬들에게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배수 시설이 나빠 비만 오면 ‘개구리 운동장’이 되는 무등야구장은 낙후한 구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외야에 미꾸라지가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젠 이런 모든 얘기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광주 새 야구장인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는 21세기 한국 야구를 대표할 만한 최신 설비로 내년 시즌 팬들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동대문운동장 야구장과 다시 한번 비교된다.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은 1963년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해 일본 프로 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즈의 장훈과 백인천이 이곳에서 고국 팬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뒷날 청보 핀토스와 삼성 유니폼을 입는 김기태는 1969년과 1970년 재일동포선수단 주력 투수로 이곳에서 ‘서브마린’의 위력을 보였다. 1972년 7월 전국지구별초청고교야구대회(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스마일 피처’ 송상복의 군산상고는 부산고에 5-4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을 고교 야구 열풍에 휩싸이게 했다.
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오랜 세월 스포츠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긴 동대문운동장은 축구장과 야구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순차적으로 헐렸다. 그 자리에는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 들어섰다.
그 자리에 축구장과 야구장은 물론 복싱, 씨름 경기장으로도 사용된 테니스장 그리고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서울 은석초등학교 시절 열심히 헤엄치던, 다이빙 풀을 갖춘 수영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좀 더 세월이 흐르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몇 안되는 이들마저 사라질 터이고.
더팩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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