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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Story] '골동품 센터' 이창수 "농구대잔치 시절 행복했다!"






1990년 농구대잔치 시절, 수준급 센터로 활약한 이창수는 지난해'최고령 프로 선수'라는 타이틀을 떼고 올해 5월부터 서울 삼성 스카우터로 코트를 누비고 있다. / 고양 = 신원엽 기자
1990년 농구대잔치 시절, 수준급 센터로 활약한 이창수는 지난해'최고령 프로 선수'라는 타이틀을 떼고 올해 5월부터 서울 삼성 스카우터로 코트를 누비고 있다. / 고양 = 신원엽 기자


[고양 = 신원엽 기자]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책 슬램덩크의 인기가 더해져 농구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농구장에는 오빠부대들이 들어찼고 학교와 시내 곳곳의 간이 농구장에는 농구공을 든 학생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요즘 농구 인기는 과거만 못한 게 사실이다. 야구와 축구에 환호하는 팬은 날로 늘어나는 반면 농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학교 또는 직장에서 전날 열린 프로 농구를 이야기 소재로 삼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길거리의 농구 코트도 한산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농구장 곳곳에는 자신만의 특별한 농구 사랑을 외치는 이들이 많다. <편집자주>

이번 주 '농구장★사람들'의 주인공은 농구대잔치 시절의 향수를 진하게 불러일으킨 이창수(43) 삼성 스카우트다. <더팩트>은 지난해까지 '최고령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코트 위에서 뛴 이 스카우트를 지난달 29일 '2012 KB국민카드 프로-아마 최강전'이 열린 고양체육관에서 만났다. 경희대 코치를 거쳐 올해 5월부터 삼성 영상전력분석원 및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매의 눈'으로 선수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었다. 낡고 오래됐지만 언제나 빛난다는 뜻의 '골동품 센터'라는 별명을 실감케 했다. 선수 시절 성실하고 집념 있는 플레이의 대명사로 꼽힌 그는 인터뷰 내내 밝은 미소와 겸손한 태도가 돋보였다.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흐뭇해 했는데, "그땐 농구가 참 재밌었다"며 만감이 교차한 듯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 오랜만이다. 올해 5월부터 시작한 스카우트 생활, 어떤가.
고생하고 있다.(웃음) 농구라는 같은 틀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분야라 무척 생소하더라. 컴퓨터를 많이 만져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메일 쓸 때나 사용했던 컴퓨터로 영상 편집 등을 하려니 많이 당황스럽고 어렵다. 액셀 같은 프로그램도 이름만 들어봤지….(웃음) 아직도 무척 서툴기 때문에, 새벽 2~3시에나 일이 끝난다. 회사 동료들도 많이 괴롭히고 있다. 시즌 중에는 아예 합숙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내나, 초등학교 농구선수인 아들에게 미안하다. 비시즌 때는 아무래도 컴퓨터 학원에 다녀야겠다.(웃음)

- '농구대잔치 재현' 프로-아마 최강전, 옛날 생각 많이 나겠다.
물론이다. 대학 때는 실업 선배들과, 실업팀 시절에는 후배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때는 몸싸움이 정말 심했다. 잠시 한눈 팔면 언제 맞았는지도 모르게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웃음)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한창 방영될 때는 상무에서 뛰었다. 결승에서 연세대와 맞붙어 진 게 아쉽기는 하지만, 농구 인기가 최고의 상종가를 칠 때 뛰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땐 정말 재밌게 뛰었다.

- 당시 농구 열기, 정말 대단했다.
무척 뜨거웠던 팬들의 응원이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난다. 삼성-현대, 연대-고대 등 빅게임이다 싶으면, 팬들이 거의 새벽부터 나와서 줄을 서서 표를 사는 경우가 많았다. 불법이지만 암표상도 정말 많았던 시기다. 제 팬은 아니었겠지만, 잠실체육관 3층까지 꽉꽉 차지 않았는가.(웃음) 그 인기가 좀 더 유지되고 계속 더해 갔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확 고꾸라져 버렸다. 참 아쉽다.

- 농구 인기가 급격히 식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국제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 아시아 톱 클래스였던 한국 농구가 어느새 2위로 처졌다. 이제 중동세도 만만치 않다. 좋은 유망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결국 본궤도로 올라갈 것 같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야구처럼 올림픽이나 WBC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많은 관심을 모을 수 있다. 대표팀 차출 일정 등 선수들이 체력을 회복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뒷받침 돼야 할 것 같다. 또한 저를 비롯해 프로에 있는 모든 농구 인들이 반성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관리를 너무 못했다." 이창수(가운데) 스카우트는 선수 시절 젊은 혈기에 팬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도 보였다며 아쉬워했다. / 스포츠서울DB


- 외국인 선수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수 시절 '손해'를 본 당사자이기도 했는데.
프로 초창기엔 용병들이 앨리훕 덩크 등 그 전에는 볼 수 없던 화려한 볼거리를 많이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 팬들이 식상해하는 것 같다.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는 농구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이젠 용병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기가 많다. '저 선수 빼고, 볼 게 없어!'라는 인식이 자리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병 제도 이후 국내 빅맨이 죽었다는 게 아쉽다. 솔직히 제가 프로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가 뭔 것 같나? 밑에서 올라온 애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빅맨은 한마디로 3D업종으로 바뀌었다. 장신 슈터들이 최근 많이 생긴 것도 유망주들이 빅맨을 기피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거다. 예전에는 오세근(KGC) 같은 훌륭한 선수들은 꾸준히 나왔다.

-96년 B형 간염에 걸려 2년간 뛰지 못하기도 했다. 남다른 농구 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
대학 3학년 때부터 실업 때까지 줄곧 주전 센터로 뛰었다. 몸이 안 좋아서 2년간 쉬다가 프로(1997년 출범) 무대로 복귀했더니 어느 순간 내 자리가 없어졌다. 휴가 다녀왔는데, 사무실에 제 책상이 없어진 기분이랄까? 사실 쉴 때도 용병들의 경기를 보면서 '내자리가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 사람이 거의 코너에 몰리다 보니, 성격도 부정적으로 많이 변하더라. 그래서 항상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즐기면서 해라. 어차피 하는 농구, 스트레스 받으면서 하지마라. 인상 쓴다고 더 느는 것도, 덜 힘든 것도 아니다. 웃으면서 재밌게 하라'고 한다. 하기 싫어서 하는 것과 즐기면서 하는 일은 효율성이 다르지 않은가.(웃음)

- 최종 꿈이 뭔가.
프로팀 대학팀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다. 스카우트에 도전 한 것도 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서다. 지금 아니면 해볼 기회가 없고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기도 했다. 중국 청소년 팀 감독 제의가 들어와 많이 망설였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고 스카우트를 선택한 이유다. 스카우트 및 전력분석원은 선수-코치 때처럼 같은 벤치 앉아 있더라도 보는 시점이 참 다른데, 큰 공부가 되는 것 같다. 앞으로 1~2년 정도 더 배워야하지 않을까 싶다. 해설 쪽은 아무래도 제가 말수가 적고 순발력이 떨어져서 무리아니겠는가.(웃음)

- '농구장★사람들' 공식 질문! 당신에게 농구란?
친구다. 정말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제 주위엔 항상 농구공이 있었다. 솔직히 마음이 괴로우면 새벽 1~2시에도 코트로 나가 몰래 불을 켜놓고 연습했다. 고1 때 '길거리 캐스팅'을 받고 우연히 시작한 농구는 철들고 나서 스스로 처음 선택한 길이었고, 이후 30년 가까이 함께 걸으며 제 곁에서 위로가 돼줬다. 제 삶의 일부분인 것 같다. 아내 같은 존재? 그렇게 말하면 와이프가 화낸다. 여자 친구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 농구는 그냥 친구다.(웃음)

농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여전한 이 스카우트는 부쩍 인기가 떨어진 '친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저를 반가워할 극소수 팬들에게 한마디 하겠다"고 웃으며 운을 뗀 그는 "좋은 대학 신입 선수들이 많이 눈에 띄어 즐거운 요즘이다.(웃음) 농구 발전을 생각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농구가 도약할 기회가 분명 올 거라고 믿는데, 선수들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예전처럼 깊이 있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면 꿈을 먹고 자라는 어린 선수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 같다"고 당부했다. 이 스카우트의 진심어린 바람 속에 한국 농구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다음 주 농구장을 빛낼 사람은 또 누구일까.

wannabe2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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