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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세월도 지우지 못한 진실…박찬길 검사 억울한 죽음, 국가가 책임졌다
서동용 변호사, 유족 대리해 국가배상 소송 진행
법무부 항소 포기로 6억 9000만 원 배상 확정


고(故) 박찬길 검사의 아들 박경진 목사가 지난달 19일 순천 오천그린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합동추념식에서 재판도 없이 총살당한 아버지의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영신 기자
고(故) 박찬길 검사의 아들 박경진 목사가 지난달 19일 순천 오천그린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합동추념식에서 재판도 없이 총살당한 아버지의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영신 기자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80년 가까이 묻혀 있던 한 검사의 억울한 죽음이 마침내 국가의 책임으로 인정됐다. 법의 이름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지키려 했던 검사가 정작 자신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희생된 비극이다.

여수·순천 10·19사건 당시 경찰에 의해 재판도 없이 총살된 고(故) 박찬길 검사와 그의 부친 박인서 씨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이 확정됐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10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의 국가배상 판결에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박 검사 유족에게 총 6억 9000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

이번 판결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억울한 희생의 진실을 법정에서 다시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기까지 이어진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유족의 법률대리인을 맡아 소송을 진행한 서동용 변호사(전 국회의원)가 있었다.

서 변호사는 박 검사 부자의 희생을 단순한 과거의 집단 희생 사건으로만 접근하지 않았다. 당시 현직 검사였던 박찬길이 경찰의 불법 행위에 맞섰다가 오히려 경찰의 보복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사건의 특수성에 주목했다.

1947년 11월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석 검사로 임관한 박 검사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

특히 경찰관이 무고한 민간인을 사살한 사건에서 해당 경찰관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경찰의 권한 남용과 불법 행위에 맞선 박찬길 검사에게 경찰은 그를 '적구(赤狗) 검사'라고 지칭하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1948년 10월 23일 박 검사는 인민재판장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고 순천북초등학교 교정에서 재판도 없이 총살됐다. 부친 박인서 씨 역시 경찰에 연행돼 심한 구타와 고문 끝에 숨졌다.

그러나 박 검사가 인민재판에 관여했다는 혐의는 이후 법무부 조사와 국회 기록 등을 통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기관의 조사와 공식적인 확인에도 유족의 아픔은 오랫동안 해소되지 못했다.

박 검사의 차남 박경진 목사는 지난 7월 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동용 변호사는 유족을 대리해 소장 작성부터 법정 변론까지 소송을 이끌었다.

재판부는 "경찰이 직무집행의 외형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평소의 악감정과 보복 의사에 따라 박 검사를 살해한 불법 행위였다"고 판단했다.

특히 일반적인 집단 희생 사건과 달리 경찰의 가해 동기와 불법성, 피해자의 지위, 사건 이후 국가의 태도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정부의 조사로 희생 경위가 밝혀졌음에도 국가가 유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유족을 대리해 소장 작성부터 법정 변론까지 소송을 이끈 서동용 변호사. /본인 제공
유족을 대리해 소장 작성부터 법정 변론까지 소송을 이끈 서동용 변호사. /본인 제공

서 변호사는 "박 검사 부자의 희생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뜻깊은 일"이라며 "현직 검사조차 이처럼 억울하게 희생됐다면 가난하고 힘없는 일반 민간인들은 얼마나 더 억울한 일을 겪었겠느냐"고 말했다.

법무부의 항소 포기는 유족에게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됐다.

이진수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은 이번 판결에 대해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오랜 시간 고통받아 온 유족의 아픔을 신속히 치유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고(故) 박찬길 검사의 이야기는 지난 10월 19일 순천시 오천그린광장에서 열린 '제78주기 여순사건 합동추념식'에서 그의 일대기가 소개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박소정 여순사건 범국민연대 대표는 "법을 지키려 했던 검사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희생됐다는 역설적인 비극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공권력의 책임을 되묻게 한다"며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있다. 합동추념식에서 박 검사의 삶이 소개된 것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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