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생명력에 공동체 나눔의 역사

[더팩트ㅣ예천=김성권 기자] '세금 내는 나무', '재산을 가진 나무'로 알려진 예천의 천연기념물 석송령(石松靈)이 토지등기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문화유산의 가치 조명에 나선다.
6일 경북 예천군 예천박물관에 따르면 석송령의 토지등기 100주년인 2027년을 기념해 추진하는 '한국의 인격수(人格樹) 가치 증진 연구사업'이 2027년도 국가유산청 국비 지원 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오래된 나무의 생물학적 가치를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사람과 함께 살아오며 이름과 재산, 제례와 공동체 문화를 갖게 된 수목을 ‘인격수’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우리나라 자연유산에 깃든 독특한 인문·사회문화적 가치를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 중심에 예천 천향리 석송령이 있다.
◇600년 세월을 견딘 '부자 나무'
석송령은 약 600년 전 영주 풍기 지역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한 길손이 건져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월이 흘러 마을의 수호목으로 자리 잡은 석송령에 특별한 역사가 더해진 것은 1927년이다. 그해 8월 10일 마을 주민 이수목(李秀睦) 씨는 이 나무에 '영험한 나무'라는 뜻의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 자신의 토지 5588㎡를 석송령의 재산으로 상속 등기했다.
나무가 사람처럼 재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이 때문에 석송령은 대한민국 최초로 재산을 보유한 ‘부자 나무’로 널리 알려졌다. 나무가 단순히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넘어 사람과 법적·사회적 관계를 맺은 보기 드문 사례다.
특히 토지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실제로 납부해 ‘세금 내는 소나무’라는 별칭까지 얻으면서 석송령은 국내에서 가장 독특한 자연유산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나무 한 그루가 만든 '마을 공동체'
석송령의 가치는 토지 소유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은 ‘석송계’를 조직해 석송령과 그 재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해 왔다. 매년 정월대보름 전날인 음력 정월 14일 자시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올리며 수백 년 이어온 공동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석송령이 마을 사람들에게 단순한 나무 이상의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석송령의 재산은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한 나눔으로도 이어졌다.
1985년에는 대통령 하사금 500만 원을 지원받아 '석송장학회'를 설립했고,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비롯된 재산이 다시 지역사회와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으로 환원된 것이다.
석송령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600년을 살아온 생명체라는 자연유산적 가치에 더해, 이름을 부여하고 재산을 귀속시키며 제사를 지내고 그 재산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자연이 맺어온 관계의 역사가 고스란히 축적돼 있다.

◇석송령 넘어 전국 '인격수' 발굴
예천박물관은 석송령의 토지등기 100주년을 계기로 연구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한다.전국 천연기념물 가운데 사람처럼 이름과 인격적 의미를 부여받고 지역 공동체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수목, 이른바 ‘인격수’를 전수조사하고 각각의 역사와 전승, 공동체 문화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연유산을 단순히 ‘보호해야 할 오래된 나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온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나무에 얽힌 설화와 전설, 마을 제례, 공동체 조직, 재산 관리와 나눔의 전통 등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한국 자연유산에 담긴 고유한 인문·사회문화적 가치를 학술적으로 정립할 예정이다.석송령은 이 연구의 출발점이자 대표적인 사례가 될 전망이다.
◇"자연유산 넘어 세계적인 문화자산으로"
예천군은 이번 국비사업 선정을 석송령의 역사적 가치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예천의 자연·문화유산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안병윤 예천군수는 "석송령은 단순한 자연유산을 넘어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며 공동체 나눔을 실천해 온 예천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세계적인 문화 자산"이라며 "등기 100주년을 계기로 석송령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립해 예천군 문화유산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이겠다"고 말했다.
1927년 한 사람의 뜻에서 시작된 한 그루 나무의 재산 등기는 이제 100년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문화유산 연구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세금 내는 나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넘어, 한 그루의 나무와 사람이 맺어온 600년의 관계를 어떻게 보존하고 미래 세대에 전할 것인가.석송령 토지등기 100주년은 그 질문에 답을 찾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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