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붉은 마가목 열매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렸다. 울릉도 유일의 평원인 나리분지가 붉은 가을빛으로 물들면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11일 울릉군 북면 나리분지. 성인봉 자락을 따라 들어선 마을 곳곳에는 가을바람이 불었고, 행사장에서는 마가목 열매를 활용한 먹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관광객을 맞았다.
이날부터 이틀간 열린 '나리분지 마가목 생태문화체험 한마당'은 단순한 지역축제가 아니었다. 주민들이 직접 나리분지의 자연과 자신들의 삶, 오랜 생활문화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주민 주도형 생태문화 행사'였다.
행사장에서는 탐스럽게 익은 마가목 열매를 직접 보고 마가목 와인을 맛보는 체험이 이어졌다. 대구·경북 미스코리아들도 행사장을 찾아 관광객들과 어울리며 분위기를 달궜다.

해가 기울자 나리분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가을 밤 나리마을 영상 문화제’에서는 나리분지의 풍경과 별빛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고, 주민들의 삶을 소개하는 영상과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특히 나리마을 할머니들이 직접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이번 행사의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둘째 날 재현된 ‘감자삼골찌기’였다.
감자삼골찌기는 삼베옷을 만들던 옛 나리마을의 생활방식에서 비롯됐다. 당시 주민들은 큰 통이 부족하자 땅을 파고 돌을 달군 뒤 물을 부어 수증기를 만들고 삼을 익혔다. 어린아이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감자와 옥수수를 같은 방식으로 쪄 먹었다.
그렇게 사라졌던 생활문화가 주민들의 기억을 통해 55년 만에 다시 살아났다.
김기성 어르신 등 주민들이 간직한 옛 기억을 토대로 당시 방식을 재현하자 관광객들은 감자삼골찌기를 직접 체험하며 나리마을의 과거를 만났다.
주민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었고, 관광객들에게는 울릉도의 자연관광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밖에도 마가목 열매 채취와 울릉 마가목주 담그기, 요가, 족욕, 숲·지질 해설 투어, 생태관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특히 나리분지의 자연환경과 마가목을 단순히 보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생활문화와 연결했다는 점에서 기존 축제와 차별화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의 대표적인 생태·문화 관광지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독특한 분지 지형과 성인봉 일대의 울창한 숲을 품고 있으며, 가을이면 붉은 마가목 열매가 장관을 이룬다.
이번 행사는 여기에 주민들의 삶과 기억을 더했다.
관이 무대를 만들고 주민이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이 직접 자신의 마을을 소개하고 관광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축제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김두순 나리마을 이장은 "나리분지의 아름다운 자연과 주민들의 삶이 어우러진 행사를 통해 울릉도의 가을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가을빛으로 물든 나리분지에서 관광객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붉은 마가목이 익어가는 나리분지.
그곳에서는 가을만 익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55년 동안 묻혀 있던 마을의 기억과 주민들의 삶까지 다시 관광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이 만든 분지에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더해지면서 나리분지는 새로운 관광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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