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전남 동부권 교육계 원로들이 국립순천대학교에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설립할 것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퇴직 교육장과 유치원·초중고등학교 교장 등 동부권 교육계 원로 24명은 19일 오전 11시 국립순천대학교 대학본부 앞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순천대 의과대학 설립과 대학병원 건립을 함께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평생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교육계 원로들이 지역의 의료 현안을 놓고 공동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이날은 정부가 의과대학 신설 추진계획서 제출 기한으로 제시한 20일을 하루 앞둔 날이어서, 사실상 전남 의대 신설을 둘러싼 논의에 대한 마지막 호소라는 의미가 담겼다.
원로들은 의과대학 설립 문제를 단순한 지역 간 유치 경쟁이나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이 고향에서 배우고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우리가 만난 제자들 가운데 의사를 꿈꾼 아이들은 예외 없이 이 지역을 떠나야 했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며 "이것은 통계가 아니라 우리가 교단에서 해마다 반복해서 지켜본 현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과대학은 건물 하나를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의 아이들이 고향에서 배우고 일하며 뿌리내릴 수 있는가의 문제"라며 "교육자로서 우리는 이것을 기회의 문제라고 부른다"고 강조했다.
동부권의 의료 현실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원로들은 전남 동부권이 전남에서 인구가 많은 지역인 데다 광양만권에 석유화학·제철 국가산업단지와 대형 항만이 밀집해 있어 중대재해와 중증·응급질환의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동부권에는 권역외상센터와 닥터헬기 배치 의료기관, 결핵전문치료기관, 공공어린이재활의료센터 등이 모두 없어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함께 설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들은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은 함께 있을 때에만 제 기능을 한다"며 "학생을 가르치는 곳과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온전한 의학교육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평생 교육 현장을 지켜온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부권의 교육·행정 기능이 약화된 상황에서 의료 기능까지 서부권으로 집중될 경우 지역 공동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원로들은 전남도청과 전남도교육청, 전남경찰청이 서부권으로 이전한 지 20년이 지났다는 점을 언급하며 "행정이 떠나고 교육이 멀어진 자리에 이제 의료마저 서부권으로 집중된다면, 이것은 지역 간의 다툼이 아니라 한 지역이 서서히 비어 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발표된 '초광역 통합의료벨트' 구상에 대해서도 당사자인 대학과 지역사회에 대한 충분한 협의 없이 결정되고 통보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부권에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의료 연구 기능이 함께 배치된 반면 동부권에는 기존 의료기관의 재편 정도만 담겼다고 비판했다.
최근 지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원로들은 "지금 이 지역은 현수막으로 갈라지고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며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다. 교육자로서 참담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인은 주민들의 다툼에 있지 않다"며 "기준 없이 진행된 절차가 사람들을 갈라 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네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먼저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의 소재지를 인구 규모와 산업재해 위험, 중증·응급의료 수요 등 객관적 지표에 따라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 정부가 제출 기한을 이유로 전남의 의과대학 설립 기회를 거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남광주시에는 소재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시민들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며, 국립순천대학교에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대학병원을 함께 건립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정부 제출 기한과 관련해 원로들은 "정원 100명은 지난 2월 이미 전남에 배정된 것"이라며 "두 대학의 협의가 늦어졌다는 이유로 지역주민이 그 기회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들은 자신들이 거리로 나서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이 문제가 우리 세대의 이해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부권이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제자리에 두라는 것"이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동부권 시민과 뜻을 모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8일 목포대와 순천대가 각각 '의과대학 및 교육(부속)병원 설립 추진계획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전남광주시는 순천대가 양 대학의 통합을 전제로 한 공동 계획서가 아닌 단독 의대 신설 추진계획서를 제출한 게 '통합대학 의대 신설'이라는 교육부의 전제에 어긋난다고 보고 순천대 제출 계획서를 19일 오전 반려했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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