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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산업을 앞섰나…구미시 반도체 팹 유치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준비된 도시' 구미시 왜 선택받지 못했나
김장호 구미시장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구미 마지막 승부수는 'AI·반도체 생태계'


김장호 구미시장이 구미국가5산업단지 2단계 조성 현장을 둘러보며 반도체 팹 유치 기반 조성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구미시는 82만 평 부지를 평당 1000원에 공급하는 파격 인센티브를 내걸고 반도체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미시
김장호 구미시장이 구미국가5산업단지 2단계 조성 현장을 둘러보며 반도체 팹 유치 기반 조성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구미시는 82만 평 부지를 평당 1000원에 공급하는 파격 인센티브를 내걸고 반도체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미시

[더팩트ㅣ구미=정창구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 무대가 광주·전남으로 향하면서 경북 구미시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호남권을 새로운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공식화하면서 그동안 반도체 팹 유치에 공을 들여온 구미시는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구미시는 제5국가산업단지 82만 평을 반도체 팹(Fab) 부지로 평당 1000원에 공급하겠다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세웠다. 사실상 1조 2000억 원 규모의 지원책이다. 하지만 이번 경쟁은 단순히 산업 용지 가격만으로 승부가 갈리는 싸움이 아니었다.

◇정책적 균형발전 앞에 밀린 구미

이번 반도체 투자 논의의 핵심 배경에는 국가 균형발전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권과 영남에 집중된 첨단산업을 호남권으로 분산해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정부 기조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광주·전남은 AI 산업과의 연계성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광주시에는 국가 AI데이터센터와 AI 집적단지, 관련 연구기관이 구축돼 있어 반도체 후공정과 AI 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RE100도 주요 논리로 거론된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반이 풍부한 호남권이 장기적으로 친환경 전력 확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미시는 이번 결정이 산업 경쟁력보다 정치적 논리에 기운 판단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국가 미래를 좌우할 핵심 전략산업의 거점을 정치적 셈법으로 안배한 결정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자리한 SK실트론 공장 전경. SK실트론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대표 기업으로 구미시 반도체 소재·부품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구미시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자리한 SK실트론 공장 전경. SK실트론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대표 기업으로 구미시 반도체 소재·부품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구미시

◇구미 "반도체는 생태계 산업…서남권만으로 어렵다"

구미시가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논리는 산업 생태계다.

반도체 팹은 공장 하나로 완성되는 산업이 아니다. 소재·부품·장비 기업, 전력, 용수, 물류, 인력, 연구개발 기능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구미시는 이 점에서 여전히 전국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도시라는 입장이다.

실제 구미시에는 309개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집적돼 있다. SK실트론을 비롯한 핵심 공급망도 이미 형성돼 있고, 비수도권 유일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과 남부권 반도체 벨트 조성, 반도체 R&D 인프라 구축도 추진해 왔다.

전력과 용수도 구미시가 자신 있게 내세우는 강점이다. 구미시는 전국 최고 수준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과 풍부한 산업용수를 갖춘 만큼 대규모 팹이 즉시 들어와 가동될 수 있는 준비된 도시라고 강조한다.

김 시장은 "반도체 산업은 팹 공장 혼자서 돌아갈 수 없다"며 "수많은 협력 업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하는 고도의 생태계 산업"이라고 말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LG이노텍 공장 전경. LG이노텍은 첨단 전자부품과 반도체·전장 부품 분야를 이끄는 주요 기업으로 구미시 첨단 제조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미시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LG이노텍 공장 전경. LG이노텍은 첨단 전자부품과 반도체·전장 부품 분야를 이끄는 주요 기업으로 구미시 첨단 제조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미시

◇'평당 1000원'만으로는 부족한 승부

김장호 시장이 꺼낸 '평당 1000원' 전략은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파격 카드였다. 구미국가5산단 82만 평을 활용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최종 선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글로벌 반도체 투자는 산업용지 가격보다 장기 성장성, 인재 확보, 정주 여건, 연구개발 생태계, 정부 지원 패키지까지 종합적으로 판단된다.

구미시가 향후 승부를 이어가려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연계한 산업 생태계 구축, 첨단 패키징과 연구개발 기능 유치, 국가전략사업 지정, 정부 차원의 세제·재정 지원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특히 구미시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방산, AI, 반도체를 하나의 산업축으로 묶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 제조도시를 넘어 글로벌 첨단산업 도시로 전환하는 설득력 있는 비전이 관건이다.

구미국가5산업단지 2단계 부지 조성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구미시는 이곳 82만 평을 반도체 팹(Fab) 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평당 1000원 공급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대규모 반도체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미시
구미국가5산업단지 2단계 부지 조성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구미시는 이곳 82만 평을 반도체 팹(Fab) 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평당 1000원 공급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대규모 반도체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미시

◇구미의 반격은 이제부터다

구미시는 이번 결과에 좌절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 시장은 "구미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며 "41만 구미시민의 뜻을 하나로 결집하고 대구·경북의 정치적 역량을 키워 앞으로 구미시를 선택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구미시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과 연계한 도로·철도 광역교통망 확충, 경제자유구역 조성, 국제학교 설립, 교육·주거·문화 인프라 정비 등을 통해 투자 환경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한 번의 투자 유치 실패가 구미시 반도체 전략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 10~20년에 걸쳐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부터 구미시가 얼마나 빠르게 산업 생태계와 정주 여건을 완성하느냐가 향후 국가 반도체 지도를 다시 그릴 변수가 될 수 있다.

광주·전남으로 기운 반도체 투자 흐름 속에서 구미는 뼈아픈 질문 앞에 섰다. 준비된 산업도시라는 강점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제 구미가 증명해야 할 것은 '왜 구미여야 하는가'에 대한 더 강한 답이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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