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썩은 귤 상자 이론. 영어권에서는 'One bad apple spoils the bunch'라는 말로 통하는데 직역하면 썩은 사과 하나가 결국 다른 사과들까지 망친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멀쩡하고 달콤한 귤 사이에 이미 곰팡이가 핀 귤 하나가 섞여 들어오면 처음에는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변 귤에도 검은 점이 번지고, 결국 상자 전체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속담으로는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와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정치와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대전 지역 선거판을 보면 이 '썩은 귤 상자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는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후보 개인의 역량과 정책, 이미지가 아무리 좋아도 주변 인물들의 언행 하나가 선거 전체 분위기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직선거에 나서는 모든 후보는 자신 곁에 참모를 둔다. 참모는 단순히 후보를 돕는 사람이 아니다. 후보의 입이 되고, 손발이 되며, 때로는 후보의 정치 철학까지 대신 전달하는 존재다. 유권자인 시민들은 후보 개인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후보 곁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함께 본다.
공직선거법 역시 이를 엄중하게 바라본다. 회계책임자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후보의 당선이 무효가 되는 이유도 결국 참모의 행동이 후보와 분리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후보가 몰랐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일부 대전 지역 선거 현장에서는 정책 경쟁보다 상대를 향한 비난과 조롱, 확인되지 않은 의혹 제기가 더 앞서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이런 네거티브를 직접 후보가 하지 않더라도 참모나 핵심 지지층이 대신 나서는 순간 시민들은 그것 역시 '그 후보의 정치'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후보는 점잖은데 주변 사람들이 문제다"라는 말은 결코 변명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시민들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후보의 진짜 민낯을 본다고 느끼기도 한다. 후보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어떤 언행을 제지하지 못하는지는 결국 리더십의 영역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선거철이 되면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데 집중하곤 한다. 그러나 과도한 비난과 감정적인 언행은 중도층 시민들에게 피로감만 안긴다. 상대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가치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스피커 역할을 하는 지지자 한 명의 과격한 말과 행동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이는 순식간에 선거캠프 전체 이미지로 번진다. 결국 상품성을 높여야 할 선거에서 스스로 상품에 흠집을 내는 셈이다.
선거는 결국 시민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다. 그리고 신뢰는 거창한 공약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태도, 상대를 대하는 품격, 비판의 방식 같은 작은 부분들이 쌓여 형성된다.
아무리 좋은 귤이 가득 담긴 상자라도 썩은 귤 하나를 방치하면 결국 상자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후보 한 사람의 능력만큼이나 그 곁에 있는 참모와 지지자들의 품격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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