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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교장 지낸 헨리 닷지 아펜젤러,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일제 항거로 교장 인가 취소…추방 후에도 조선 독립 자금 지원
국가보훈부, 아펜젤러 증손녀·고손녀 초청해 독립유공자 포상


1일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배재학당 5대 교장을 지낸 헨리 닷지 아펜젤러(1889~1953)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훈돼 선생의 증손녀 로라 아펜젤러, 고손녀 엘라 등이 훈장증을 펼쳐보이고 있다. /학교법인 배재학당
1일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배재학당 5대 교장을 지낸 헨리 닷지 아펜젤러(1889~1953)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훈돼 선생의 증손녀 로라 아펜젤러, 고손녀 엘라 등이 훈장증을 펼쳐보이고 있다. /학교법인 배재학당

[더팩트ㅣ대전=이병수 기자] 배재학당 교장을 지낸 헨리 닷지 아펜젤러(1889~1953) 선생이 독립운동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3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코엑스에서 열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헨리 닷지 아펜젤러의 증손녀 로라 아펜젤러, 고손녀 엘라가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았다.

이 자리엔 황문찬 학교법인 배재학당 이사장, 태동화 이사, 김욱 배재대 총장, 이효준 배재고 교장, 김종헌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 유병화·오용환 동문이 함께했다. 이번 건국훈장 수훈자 중 헨리 닷지 아펜젤러 선생은 유일한 미국인이다.

헨리 닷지 아펜젤러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고등교육기관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장남이다.

1889년 미국에서 태어난 헨리 닷지 아펜젤러 선생은 1920년부터 1939년까지 배재학당 5대 교장을 지냈다. 그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배재학당은 독립운동의 발상지로 자리매김하며 여러 고초를 겪었다.

1920년 당시 3·1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해 배재보통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를 알게 된 일제 당국은 교장인 헨리 닷지 아펜젤러 선생에게 학생들의 징계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하며 교장 인가를 취소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배재보통고등학교는 민주시민과 자주 민권운동이 활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학생 단체인 협성회, 독립신문 간행, 독립협회 창립 등이 배재에서 시작된 이유다.

헨리 닷지 아펜젤러 선생은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후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조선에서 가장 가까운 하와이에 터를 잡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주최 3·1절 기념식에서 조선 독립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당신의 채권이 도쿄를 폭격할 폭격기 구매를 돕습니다'라는 슬로건의 한미승전후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활동상은 동아일보와 하와이 일간지에 소상히 기록돼 독립운동 공적으로 인정받았다.

광복 후 헨리 닷지 아펜젤러 선생은 미국 군정 특별 고문으로 조선에 돌아와 국민을 도왔다. 6·25 한국전쟁 중엔 구호 활동에 전념해 전쟁고아와 피난민을 돌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1953년 미국에서 눈을 감는 순간에도 자신을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에 따라 헨리 닷지 아펜젤러 선생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 누나 레베카와 안장됐다.

김욱 배재대 총장은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으로 자주독립의 기틀을 세웠고 아들 헨리 닷지 아펜젤러는 일제에 항거하는 정신을 보이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tfcc202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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