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논의하던 정치적 공간 인근에서 궁중 악기 확인

[더팩트ㅣ부여=김형중 기자] 백제 사비기 왕궁지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7세기 실물 관악기와 국내 최대 수량의 목간(木簡)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사비(부여) 천도 직후 백제의 인사 행정과 국가 재정, 중앙·지방 행정 체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오전 연구소에서 부여군과 함께 진행한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2024~2025년) 성과를 공개했다.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 남쪽의 넓은 평탄지에 위치한 곳이다. 1982년부터 사비 왕궁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발굴이 이어져 왔다. 대형 전각 건물지와 수로, 도로, 대규모 대지 등이 확인되며 왕궁지로 인식되는 핵심 유적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삭설(削屑·목간의 글씨를 고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을 포함해 모두 329점의 목간이 나왔다. 단일 유적 기준 국내 최대 수량이다. 이와 함께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 '횡적' 1점도 출토됐다.
횡적은 백제 조당건물로 추정되는 7세기 건물지 인근 직사각형 구덩이(가로 2m, 세로 1m, 깊이 2m)에서 발견됐다. 대나무 재질로, 네 개의 지공이 일렬로 뚫려 있고 한쪽 끝은 막힌 구조다.
일부가 결실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였으며 잔존 길이는 224㎜다. 엑스레이 분석을 통해 입김을 불어넣는 취구가 확인됐다.
구덩이 내부 퇴적층에서 인체 기생충란이 검출된 점을 근거로 연구소는 이 시설이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던 정치적 공간 인근에서 궁중 악기가 확인된 것이다.

이번에 출토된 횡적은 부여 능산리 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세로 관악기와 달리 가로 피리 형태다.
중국·일본 사례와 비교한 결과 오늘날의 소금과 유사한 악기로 분석됐다. 삼국시대를 통틀어 실물 관악기가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제 궁중음악의 실체와 음향을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로 평가된다.
목간은 사비 천도 초기의 행정 운영을 보여주는 자료다. 상당수가 수로 유구에서 집중 출토됐으며, 간지가 적힌 목간을 통해 제작 시기가 확인됐다. '경신년'은 540년, '계해년'은 543년에 해당한다.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한 538년 직후다.
내용도 구체적이다. 인사 기록, 국가 재정 장부, 관등·관직 명칭 등이 적혀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확인된 편철 목간 가운데 "功四爲小將軍刀足二(공사위소장군도족이)"라고 적힌 사례는 '공적이 네 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임명한다'는 인사 문서로 해석된다. 편철 목간은 여러 목간을 끈으로 엮어 관리·보존한 행정 문서다.

삭설 가운데에는 월 단위 식량 지급을 기록한 장부와 5부(상·전·중·하·후부) 체계를 적은 목간, '웅진·하서군', '나라·요비성' 등 지방 행정 구역 명칭이 적힌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사비도성의 중앙 5부 체제와 방-군-성으로 이어지는 지방 행정 체계 재편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다.
이 밖에 '입동', '인심초', '현곡개' 등 어휘와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전(畑)'자가 적힌 목간도 확인돼, 백제의 문자 문화와 동아시아 교류 양상을 보여준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약 1500년 전 백제의 문서 행정 실태와 국가 운영 방식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성과"라며 "궁중 음악과 소리 복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tfcc202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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