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전국
[기고] 여수산단, 위기 대책은 나왔는데 '지도'가 안 보인다
김영규 전 여수시의회 의장

김영규 전 여수시의회 의장. /더팩트DB
김영규 전 여수시의회 의장. /더팩트DB

[더팩트ㅣ여수=고병채 기자] 주철현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다. 글로벌 공급과잉과 탄소중립 전환 압박으로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산업에 대해, 정부가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규제 특례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전남도와 여수시의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미 방향은 제시됐다. 여수국가산단을 화이트바이오·소재·부품·장비(소부장) 특화단지로 키우고, 석유화학의 위기를 탄소중립 신산업 메카로 돌파하겠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이를 위한 타당성 용역에 착수했고 관련 부서도 신설됐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정작 궁금한 '그래서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방향'은 있는데 '지도'는 없다.

전남도와 여수시가 밝힌 방향은 '석유화학산업 위기를 진단하고, 친환경 화학 소재를 키워 여수를 신산업의 메카'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범용 제품 중심 생산구조를 스페셜티로 전환하는 것은 지역, 기업 입장에서 모두 바람직한 방향이다. 또한 미래혁신지구조성, CCUS(탄소포집·활용) 시범사업 같은 산업 전환을 위한 준비도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화이트바이오·소부장 전용 단지는 산단 내 어디에 조성할 것인가? 어떤 2차 가공 기업을 유치해 어떤 밸류체인을 완성할 것인가? 기존 NCC·벌크 설비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하며, 그 과정에서 노동자·지역상권·환경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 이 핵심 질문들에 대해 여전히 '연구 중', '계획 중' 수준인 것이 문제다. 시민들은 전혀 그림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갈지는 가늠이 서질 않는다.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계획

시민들이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구호가 아니라 '손에 잡히고 보이는 계획'이다.

소부장·화이트바이오 전용 단지를 여수국가산단 어느 블록에, 항만·배후단지는 어디에 조성할 것인지 후보지와 기본 구상을 공개해야 한다. 기존 강점 산업을 중심으로 어떤 바이오 소재와 2차 가공(필름·타이어 소재·포장재) 산업을 확대할지, 최소한의 우선순위는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공장을 재배치 하는 계획이 아닌 노동자, 주변 지역, 환경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여수형 산업전환 청사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전략을 전담하는 IR(Investor Relations)팀과 기초 R&D 자문단, 산단 전환·M&A 전문가로 이뤄진 전략 조직이 구성되고 노동계와 주민, 전문가가 상시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 또한 필요하다. 산업 전환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명확한 역할분담과 협력이 필요

전남도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특화단지 지정과 예산 확보, 국가 정책 사업 연계를 추진해야 한다. 대신 여수시는 '현장 설계'를 책임져야 한다. 말 그대로 땅과 사람, 도시를 설계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부지 설정과 입주 기업 선정, 일자리 내용과 배후 부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또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주민 수용성 확보는 전남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여수시가 직접 선을 긋고 색을 칠해야 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전남도와 여수시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각자 역할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고 추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도는 끌고, 시는 밀어야' 진짜 한 팀이다.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으로 공은 이제 더 본격적으로 여수시로 넘어왔다. 위기감도 공유되었고,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본격 시행되면 예산의 물꼬도 트일 것이다.

이제 여수시는 부지, 도시설계, 노동, 환경을 모두 포함한 현장 설계를 시민과 전남도, 중앙정부 앞에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연구 중'이라는 말이 아니라, '여기, 이렇게 바꾸겠다'는 구체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지역을 책임지는 소임을 맡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도는 앞에서 끌고, 시는 뒤에서 미는 구조가 확실해질 때, 비로소 여수국가산단은 위기의 상징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환의 모범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de3200@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