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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새내기 경찰이 '귀신 잡는 순경'으로 불린 사연

  • 전국 | 2024-11-14 17:41

대구 수성경찰서 지산지구대 정규덕 순경, 70대 노인 구해
배수로에서 하루 동안 고립된 어르신 살린 신임 경찰관


대구 수성구 지산지구대 신임 정규덕 순경이 10일 70대 노인을 구조하고 있다./대구 수성경찰서
대구 수성구 지산지구대 신임 정규덕 순경이 10일 70대 노인을 구조하고 있다./대구 수성경찰서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귀신이라도 총소리를 들으면 도망갈 거로 생각했습니다."

지난 10일 밤 칠흑같이 깜깜한 쓰레기처리장에서 경찰관 2명이 플래시에 의존해 무엇인가 찾고 있었다. 6개월 된 정규덕 신임 순경(27)의 플래시가 움직이는 찰나 인근 배수로 수풀 사이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게 보였다.

플래시를 비추자 푸르스름한 타원형 물체에 마치 양쪽에 날개 같은 것이 보였다. 머리나 꼬리는 없었다. 순간 귀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순경이 다가가자 '으흐흐'라는 괴이한 소리까지 냈다. 여차하면 권총을 쓸 생각에 경찰학교에서 배운 권총 사용법까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플래시를 비추며 한 걸음씩 다가가다 귀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할배요. 괜찮심까."

하얀 날개를 가진 귀신의 정체는 전날 실종신고가 들어왔던 70대 노인이었다. 쓰레기처리장 구석 배수로에 빠져 머리가 삐져나온 것이 암흑에서는 마치 정체 모를 귀신처럼 보인 것이었다. 배수로 한편에는 노인의 목발과 휴대폰이 떨어져 있었다.

오물을 뒤집어쓴 노인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정 순경은 겉옷을 벗어 덮은 후 미친 듯이 몸을 주물렀다. 함께 온 동료도 응급처치한 후 병원으로 이송했다. 실종신고가 들어온 지 1시간 남짓 벌어진 일이었지만 노인이 저체온사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규덕 대구 수성구 지산지구대 신임 순경이 월례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대구 수성경찰서
정규덕 대구 수성구 지산지구대 신임 순경이 월례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대구 수성경찰서

사건의 시작은 10일 대구 수성경찰서 지산지구대에 한 통의 신고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내용인즉슨, '거동이 불편한 70대 남편이 하루 전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동 불편자가 하루 이상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은 사고가 났을 확률이 높았다. 지구대는 즉시 휴대폰 추적을 했다.

휴대전화의 마지막 위치는 대구 수성구 쓰레기 처리장 인근 산기슭이었다. 순찰차 4대, 총 8명의 지구대원이 땅을 훑다시피 찾았지만, 방대한 거리와 험난한 환경 때문에 '모래 숲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다른 사건 신고가 때문에 일부 차량이 철수했고 주변은 점점 깜깜해졌다.

현장 수색을 하던 새내기 경찰인 정규덕 순경은 다리가 불편한 노인 관점에서 동선 파악을 고려해 쓰레기처리장 외곽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하다면 가기 쉬운 길을 걸어갔을 것'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수색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흘렀고 플래시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소리를 지르며 수색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점점 흘렀고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경찰견이나 외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8시가 다 돼가자 산 주변은 더 어두워졌고 지구대에서는 수색을 포기해야 할지 지원 병력을 요청해야 할지에 대한 현장 판단을 요구했다.

순간 정 순경의 머릿속에는 실종자들이 맨홀에 빠지거나 배수구에 빠져 사망 후 한참 만에 발견된 사례가 떠올랐다. 그는 인근 배수구만 더 확인해 보고 보고할 생각에 플래시를 들고 배수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번쩍이는 걸 보고 발걸음을 움찔했다.

그의 플래시에는 푸르스름한 몸통에 날개가 달린 귀신같은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체온이 떨어져 낯빛이 파란 노인의 이마와 백발이었다. 앙상했던 노인은 좁은 배수로에 빠져 머리만 나왔고 목발과 휴대폰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추위와 탈수증에 걸린 노인은 정 순경이 가까이 가자 신음만 냈고 이를 귀신으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오물을 뒤집어쓴 채 배수로에 빠졌던 노인은 어둠 속에서 마치 귀신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노인을 구출한 정 순경과 동료는 지구대에 발견 보고를 한 후 병원으로 이송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조금만 더 늦었으면 생명을 놓칠 수도 있었다.

소식을 들은 노인의 가족들은 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노인은 건강을 회복했다. 가족들은 연신 지구대에 감사 인사를 전했고 정 순경의 당시 상황을 전해 들은 지구대에서는 그에게 '귀신 잡는 정 순경'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정 순경은 "첫 상황을 통해 얻은 별명을 퇴직하는 그날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이어가겠다"며 "경찰의 판단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결정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만큼 경찰관으로서의 마음가짐을 한결같이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tktf@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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