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앤스타

경기교육청, 보수단체 기사에 '도서 폐기 가능' 공문 보내고도 학교 핑계

  • 전국 | 2024-10-13 09:43

도교육청, 노벨상 한강 작품 폐기 해명이 더 논란
전교조 "도서관 검열 장소 만들고는 뒤로 숨어"


경기 수원교육지원청이 도교육청의 지침을 받아 지난해 11월 유해도서 선정 등과 관련해 학교에 보낸 공문./
경기 수원교육지원청이 도교육청의 지침을 받아 지난해 11월 유해도서 선정 등과 관련해 학교에 보낸 공문./

[더팩트ㅣ수원=유명식 기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작품이 경기도내 학교에서 유해도서로 분류된 것과 관련, 경기도교육청이 학부모가 포함된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에 책임을 떠미는 듯한 해명을 내 논란을 키우고 있다.

특정도서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보수성향 학부모단체의 민원을 받은 도교육청이 유해도서를 골라 ‘폐기’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 비롯된 일인데도 일선 학교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이다.

13일 전교조 경기지부 등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지난해 9~11월 시군 교육지원청에 보수 학부모단체의 주장이 담긴 기사 등을 공문으로 전달, 학교도서관 유해도서 결정에 참고하도록 했다.

<더팩트>가 입수한 수원교육지원청의 지난해 11월 9일 ‘학교도서관 성교육 도서 선정 시 유의 및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현황 조사 알림’이라는 공문에서도 이런 정황은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공문은 3일 전 도교육청 평생교육과의 지침을 받아 204개교에 시행한 것이다.

수원교육지원청은 이 공문에서 ‘학교도서관에 비치된 일부 유해한 성교육 도서에 대해 선정성, 동성애 조장 등을 우려하는 다수 민원이 있다’며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서는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협의 후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문 뒤에는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 기준 및 관련 법령’과 관련 기사를 첨부했다.

기사는 "공공·학교도서관 음란도서 즉각 폐기하라"라는 등의 보수성향 학부모단체와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기자회견 내용 등이 대부분이었다.

수원교육청은 6일 뒤인 같은 달 16일에도 공문을 한 차례 더 시행했다.

이번에는 ‘학교도서관 성교육 도서의 교육적 운영 및 관리 재안내’라는 제목을 문서를 통해 ‘부적절성이 심할 경우 폐기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교육적 측면에서 자체 판단해 운영하시기 바란다’는 단서를 달았으나 논란이 있는 도서는 사실상 없애도록 처리기준을 명확히 한 셈이다.

각 교육지원청을 통해 도교육청의 지침을 전달받은 도내 2490여 개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등 총 2517권을 성교육 유해도서로 결정해 폐기했다.

이 가운데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2권을 없앤 학교도 1곳 있었다.

도교육청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이후 비판이 쏟아지자 ‘학부모가 포함된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도교육청은 별도의 자료에서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서는 학교도서관운영위 협의에 따라 적합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했을 뿐"이라고 했다.

특정 도서에 대해 폐기를 지시한 적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교조 경기지부는 "도교육청이 학교도서관을 검열과 통제의 장소로 만들고 놓고는 학교 재량이라는 핑계 뒤에 숨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지부는 성명을 내 "유해성에 대한 객관적 기준도 제공하지 않은 채 성교육 도서 폐기를 조장하고 압박한 것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일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지난 2000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다.

vv8300@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