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설치는 가능한데 흔한 전망대‧망원경은 불가
주요 관광지점에 배제…선박투어‧스카이워크 설치로 접근성 높여야
[더팩트ㅣ경주=최대억 기자] 경주시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중 왕릉인 문무대왕릉 관광자원화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문화재 당국의 문화유산 보호 규제와 경주시 일부 공무원의 억지 논리 등에 발목 잡혀 전망대조차 설치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심지어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예산을 들여 시내 곳곳에까지 무인계측기를 설치하는 등 관광산업의 동향을 제대로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정도의 스토리텔링 자료를 보유한 문무대왕릉은 주요 관광지점뿐 아니라 무인계측기 설치도 외면받는 실정이다.
현지를 방문한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선박·스카이워크 투어는 고사하고 망원경 설치조차 금지된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문무대왕릉은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이다. 기록에는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1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문무대왕릉 일대의 전망대 설치는 관광객의 도로 통행 위험 요소가 있는 것도 이유로 꼽혔고, 이견대의 관광용 망원경 설치는 문화유적 경관을 해치는 요소로 간주해 불허되는 등 지역민과 관광객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주시는 문무대왕릉을 주요 관광지점으로 승격하기 위한 절차인 ‘통계대상지 관광지점 변경 사항 적용 신청’을 단 한 차례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왕릉은 가로 35m, 세로 36m 크기의 바위섬에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수면 아래 덮여 있는 형태다.
동해안 최대 관광지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 왕릉은 해안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다.
경주시는 해양 영토 수호의 염원이 담긴 문무대왕릉 주변 일대가 갖고 있는 역사·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지난 2014년부터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 2017년부터 10년간 270억 원을 들여 이곳에 유조비 건립과 탐방로, 공원 및 조경시설, 전망대·이견대 연결 교량 설치 등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주시는 4년 전부터 문무대왕릉 주변에 난립한 굿당을 정비하는 등 지난해 9월 경역정비공사(1차 주차장)에 대한 문화재청 승인을 받아 당초 8월 중 완공 예정이었으나 해수욕장 개장에 맞춰 지난달 10일 앞당겨 공사를 마쳤다.
또 현재 진행 중인 2차 경역정비공사(공원)에 대한 실시설계 용역과 미보상된 토지 및 건물(14필지, 9동) 매입 등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변 상가 등 문화유적 경관저해 시설 정비와 감은사지, 이견대와 연계한 문화관광 인프라 구축이 전체 사업의 골자이다.
하지만 경주시가 당초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관광객들이 바다 정면에서 문무대왕릉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설치(안)를 2014년부터 6년에 걸쳐 추진했지만 당시 국가유산청(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불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주시에 따르면 설치하려던 전망대 위치가 문화재 보호구역(6640여㎡)이라는 점과 역사적으로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행차했던 정자(이견대)에서만 망배(望拜)해야 한다며 문화재위원회에서 별도 전망대 설치에 대해 ‘수용 불가’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전망대 등 설치를 반대하며 문화재위원회 측에 선 경주시 관계자는 "신문왕이 아버지를 바라본 이견대에서도 충분히 전체 광경을 볼 수 있다"며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이견대에 존재하는 이견정(利見亭)은 신문왕 때 만든 것이 아니라 1970년 발굴로 건물지를 확인한 후 안압지 등에서 확인한 신라의 건축 양식을 추정해서 197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실제 위치는 더 위쪽이었다는 설도 나온다.
오히려 ‘이견대 추정지-문무대왕릉’ 간 전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제3의 위치에 경주시의 주장대로 전망대를 설치해 관광명소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신문왕이 아버지 뜻에 따라 그의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한 후 동해 대왕암 일대에 뿌렸다면 이동 수단은 당연히 배일 수밖에 없다.
고증을 거쳐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문왕이 왕래한 선박 투어 또는 대왕암을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스카이워크 설치 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따라 역사 고증에 따른 추가적인 규제 완화와 체험관광상품 개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망대 설치 등 새로운 관광 콘텐츠 구상에 공감하는 경주시 관계자는 "당초 계획된 전망대 설치 지점은 도로와 한참 떨어져 있어 도로 통행 사고 위험과 무관한 곳이다. 역사 고증과 전혀 관계없는 문화재위원회 측의 주장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특히 지금의 이견대에는 그 흔한 망원경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해서 현상변경(국가지정문화재의 현재 상태를 변경하는 행위) 신청도 아예 포기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경주시와 국가유산청 입장을 정리하면 문무대왕릉 성역화 사업에서 경관 훼손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현재 무분별하게 들어선 굿당 등을 말끔히 정비하되,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 위치한 화장실은 신문왕의 사용 흔적 등 역사 고증에는 없지만 유적지 보존 구역 열외 시설물로 설치 가능한 반면, 도로와 한참 떨어진 전망대는 해당 규정에 따라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곳을 다녀간 한중기업가협회 추이잉광(57) 중국 북경지회 부회장은 "지난 방한 일정에서 대구시청을 방문한 후 문무대왕릉을 한 차례 찾았지만 가까이 갈 수가 없어 그저 해변에서 바위만 보고 와서 실망한 부분이 컸다"면서 "신라의 영웅이 잠든 곳에 전망대나 스카이워크 등 접근시설이 없어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문무대왕릉은 보존도 중요하지만 활용도 매우 중요하다"며 "본래의 가치와 원형에 손상이 없는 범위 내에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국내는 물론 외국에도 널리 알리는 소중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도록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에 지역구를 둔 김석기 의원도 지난 4‧10 총선 기간에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활용해서 전망대 등 여러 관광상품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구상해야 한다. 만약 당선된다면 애매한 부분은 22대 국회에서 문화재 위원들을 만나 설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tktf@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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