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추측성 유도 문항 등 교직원 간 음해 우려
억울해도 공식 소명 ‘0건’, 인사·상여에 반영돼
[더팩트ㅣ안동=최대억 기자] "청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설문조사에서 거짓으로 응답하면 진실로 낙인찍혀 버린다. 소명하자니 구설에 오르고 공개될까 참고 산다."
경북도교육청이 시행하는 공직자 부패 위험성 진단을 위한 설문조사가 허위 또는 악의적으로 응답해도 무방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북도교육청 소속 교직원 A 씨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직무와 관련해 골프접대 등 향응이나 편의를 요구하거나 받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엔 사실상 평소 마음에 안 드는 상급자나 승진 경쟁 상대를 음해할 목적으로 체크하면 응답자는 개인정보가 보장돼 무방하다"며 "내가 하급자일 때 그런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경북도교육청은 2011년부터 매년 5월을 전후해 본청과 산하 교육지원청, 직속 기관, 일선 학교, 유치원 등 관내 모든 구성원의 개인별 청렴도 등을 평가해 인사 및 성과 상여금 등에 반영하고 있다.
평가 결과 하위 점수에 포함되면 학교장의 경우 중임에서 재평가 등 페널티를 준다.
이 진단은 조직 환경 부패 위험성과 업무 환경 부패 위험성, 개인별 청렴도 등 3개 분야(20개 문항)에 걸쳐 전문 조사기관이 온라인 설문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평가 대상자를 상급자와 하급자, 동료 등이 직접 평가하는 제도다.
평가대상자와 평가단은 공립·사립 교원 2만 8217명, 교육전문직(장학사) 422명, 지방공무원 4716명, 사립학교 행정실 직원 768명 등 총 3만 4123명(지난해 4월 1일 기준)이 원칙상으론 모집단이 된다.
올해의 경우 1364명이 평가 대상자로 선정됐으며 평가단 참여율은 5월 22일부터 31일까지 설문조사를 시행했지만 평가단 참여 수가 절반에 그쳐 6월 7일(2차)과 12일(3차)까지 2차례 연장 끝에 64.1%(1만7121건) 참여율을 채웠다.
경북도교육청 교원 및 직원 수는 총 3만 4000여 명이지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평가단 수는 사람 수가 아닌 참여 건수인 3만 1485건 가운데 2만 179건이 온라인으로 이름 대신 부여된 코드번호로 접속돼 '모름', '거절' 등 응답을 제외한 1만 7121건(점수화로 가능한 수)으로 최종 집계됐다.
문제는 설문지 항목이 객관적 지표로 평가되기보다 직원들의 개인적인 의견이 반영되거나 직원 간에 부패 가능성을 추측하는 문항들이 포함돼 있어 평가 대상자와 평가단 간에 '갑질·을질(음해)'을 조장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문에서 부서장과 국장의 업무 환경 부패 위험성을 묻는 '소관 업무와 관련해 청탁을 받은 가능성이 얼마나 높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6번)의 경우, 사실과 무관한 추측성 질문에 응답토록 유도했다.
또 개인별 청렴도 평가에선 '근무시간 중 주식 투자나 사우나 등 사적 업무'를 묻는 문항(8번)은 개인에 대한 사찰(査察)을 통해서만 팩트 체크가 가능한 질문으로 구성됐으며 '청렴에 대한 의지 및 부패 방지 노력 수준'에 대한 문항(10번)의 응답 범주는 막연한 추정을 유도하는 형태였다.
특히 고위공직자로서 마땅히 하위 평가(상급자를 평가)를 받아야 할 교육감과 보좌를 맡는 부교육감은 각각 선출직, 국가 파견직이라는 이유로 평가 대상에서 빠져 있어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더욱이 교육감은 평가 대상자의 채점 결과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설문 결괏값을 공식적인 소명 절차 없이 일방적인 채점 결과를 보고받고 있기 때문에 인사 및 성과 상여금 등을 결정하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지위를 악용할 수 있는 우려의 심각성을 더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억울한 평가를 받고도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한 피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이 대부분 침묵을 이어간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응답자 정보는 사실상 코드번호로 소속과 성명, 직위(급), 휴대폰 번호, 이메일 등 모두 확인이 가능하지만 비밀의 보호 및 통계목적 이외 사용이 금지돼 있어 맹백한 허위 사실을 기재하더라도 응답자 공개와 처벌은 아예 불가능한 모양새다.
교직원 B 씨는 "나도 상대를 비방할 목적으로 예전에 그런 적이 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이젠 더 이상 이런 대물림되는 것을 막고자 제보하게 됐다"며 "북한의 5호담당제와 다를 것이 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제도 개선이 투명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고발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3년간 수억 원의 예산(매년 2000만 원 규모의 용역비)을 들여 경북도교육청이 실시하고 있는 이같은 형태의 설문 평가에 대해 교직원들의 참여 의사 확인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교육청 감사실 관계자는 "억울함을 호소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소명자료를) 공문을 받은 적은 없다"면서 "평가 결과에 전화로 불만 등 문의가 오는데 대부분 점수에 만족을 못하거나 누가 자신을 평가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묻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직원 간 상호 비방하고 거짓으로 응답할 가능성에 대한 제도 개선에)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며 "설문지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표준 모델인데 저희가 자체적으로 문항 수를 줄이고 내용을 통합해서 만든 것이다. 설문조사 실시 여부는 각 교육청에서 판단하며, 17개 교육청에서 다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충남도육청, 경남도육청, 경기도육청 등 3곳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이런 평가 모델을 통한 설문조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경북도교육청이 청렴도 향상을 위해 실시하는 공직자 부패 위험성 진단의 설문조사 형태는 거짓말로 답변해도 응답자만 보호되는 '카더라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비밀 보장을 명시했지만 부당하게 저평가를 받은 해당 교직원에 대한 채점 결과는 교육감과 당사자에 통보되고도 공식적인 소명 절차 및 기록은 전무한 실정이다.
억울하게 하위 점수를 받더라도 채점한 응답자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설문 평가단 구성은 본청의 경우 기관장은 하위 평가(상급자를 평가)만 이뤄지고 6급과 장학사 이상은 상위·하위·동료를 평가하도록 돼 있다.
교육지원청 22곳과 연수원, 연구원, 도서관, 정보센터, 문화원, 해양수련원, 교육원 등 직속기관 11곳도 기관장은 하위 평가만 있고 부서장(과장) 이상에 대해선 상위·하위·동료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일선 학교의 경우 학교장은 하위 평가가 우선으로 적용된다. 같은 지역의 교장 간에 동료 평가가 이뤄진다.
5급 행정실장(공립학교)은 상위·하위·동료(교감) 평가를 받지만 동료로 구분되는 교감은 하위 평가 대상에선 열외가 된다. 평가 열외 대상은 교감을 비롯해 임종식 교육감, 김태형 부교육감, 감사실 직원 3명, 휴직·파견자 등이다.
이와 관련 경북도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채아 의원(경산)은 "인사, 상여금 등과 직결되는 설문조사인 만큼 각 문항의 객관적 지표와 형평성 등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종합청렴도평가와 이 설문조사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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