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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신 신부 “민주화운동 기억해야”…우리 모두 빚진 자들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공동대표 ‘다시 또 힘차게’

박창신 신부는 신학대를 나와 군 제대 후 1973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39년간 익산, 정읍, 전주 성당 등에서 사제로 부역하다 2012년 8월 은퇴했다. 전북지역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면서 문정현·규현 형제 신부와 함께 대표적인 '강성 신부'로 꼽힌다. 사진=김도우기자
박창신 신부는 신학대를 나와 군 제대 후 1973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39년간 익산, 정읍, 전주 성당 등에서 사제로 부역하다 2012년 8월 은퇴했다. 전북지역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면서 문정현·규현 형제 신부와 함께 대표적인 '강성 신부'로 꼽힌다. 사진=김도우기자

[더팩트 | 전주·익산=김도우 기자]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임시총회를 열고 ‘다시 또 힘차게’ 출발한다.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8월 재건을 위한 공동대표단과 집행위원 회의를 통해 임시총회를 내달 2일 소집한다.

<더팩트>는 31일 박창신(신부·82·전주교구원로사제·사진) 공동대표를 만나 방향과 의미를 들어봤다.

박 대표는 "(아시는 것처럼)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며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화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시기적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재건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추진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이어 "민주화 운동했던 교수님들이 기념사업회 재건하자 등 의견이 모아져 9월2일 임시총회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전북도에 단체로 등록되어 있다"며 "민주화 운동을 잊지 않기 위해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오늘이) 은퇴한지 꼭 10년이 된다"며 "평일에는 수녀원, 주일은 양로원에 가서 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라고 불리는 박창신 대표는 1980년대 민주화 현장을 다니며 역사의 현장을 사진에 담았다.

박 대표가 찍은 사진은 시간이 지나 빛바랜 사진이 됐지만 민주화 운동의 정신만큼은 선명히 남아있다. 박 대표가 처음부터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

1974년 가톨릭농민회가 발족한 후 박 대표는 1975년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었지만, 농민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그러던 어느 날 광주에 다녀온 가톨릭농민회 총무의 보고로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알게 됐다.

익산 모현동 성당에서 만난 박창신 신부는 평소
익산 모현동 성당에서 만난 박창신 신부는 평소 "선을 행하도록 명령받은 사제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사명이 있다"며 낮은 곳을 찾고, 어려운 이웃과 함꼐 하는 것이라 했다. 사진=김도우 기자

1980년 5월 18일, 박 대표가 익산 여산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던 때였다. 박 대표는 그때부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주일학교 학생 등 신자들이 힘을 보탰다.

박 대표는 신자들과 함께 전주교구에서 제작한 유인물을 나눠주며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알렸다.그런데 1980년 6월 25일 밤 11시 여산성당에서 괴한에게 테러를 당하고 하반신이 마비된다.

지금도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니는데 이때 당했던 테러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과 여산성지 개발에 힘쓰던 박 대표는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박 대표는 "앞이 깜깜했다. 다른 활동을 못 하고 교구청이나 수도회에 가서 미사나 해주면서 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이던 때 박 대표는 교구청에 있던 난 화분을 보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석동일(지하동굴) 사진작가를 만나 사진을 정식으로 배워 전북 지역 민주화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는 "1980년대 시위 현장에서는 아무도 사진을 못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다 빼앗기고 붙잡혀 갔다. 그런데 제가 로만 칼라를 하고 사진기를 들면 사진을 찍도록 해줬다"며 "군산 오룡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던 1984년부터 시위 현장을 다니며 70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찍은 사진들은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보관하고 있다. 전국 각 단체에서 민주화운동 강연이나 학술대회, 글을 쓸 때 그의 사진이 인용된다. 1942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박 대표는 1973년 사제품을 받고 전주 중앙본당 보좌, 순창·요촌·여산·오룡동·우전·쌍교동·무주·금암·연지동·모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1976년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초대 담당 신부를 맡아 5년간 농민 사목에 관심을 쏟기도 했다.

박 대표는 2012년 8월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원로사제의 길을 걷고 있다.

익산 모현동 성당에서 만난 박창신 신부는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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