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아픔 이겨낸 마윤미 단장, 자기희생으로 어려운 어린이들 ‘꿈과 희망’ 키워
[더팩트ㅣ순천=유홍철 기자] "캐리비안 해적(영화음악), 파사칼리아(클래식), 진도아리랑(민요), 고향의 봄(동요)"
순천시 별량면 봉림리 한 교회의 연습장엔 다양한 장르의 연주곡이 울려퍼진다.
매주 월요일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 한 자리에 모인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 소속 55명의 고사리 손은 현란하면서도 일사불란하다.
이들이 빚어내는 화모니가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처럼 현대인의 황량한 마음을 적시는 청량함으로 다가온다.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는 순천지역 13개 초‧중‧고 55명의 학생들이 1바이올린,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구성한 청소년 현악오케스트라이다.
2018년 봄 미미하게 첫 발을 뗀 오케스트라가 4년이란 짧은 세월 속에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 4월16일 목포신항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7주기 기억식 추모연주회, 5월17일 전남도청에서 개최된 전남 5.18민중항쟁 41주년 기념식 음악회에 참가할 정도로 제법 성장했다.
이같은 결실을 얻기까지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도 여느 단체의 처음처럼 초라하고 막막했다. 리더에게는 피와 땀을 요구했다.
지난 2018년 3월 시골교회 목회자 자녀와 다문화 아이들 7명을 멤버로 별량현악합주단으로 출발했다. 별자리 이름인 푸르케리마(아름다운 사람들)오케스트라를 거쳐 지금의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로 이름이 바뀌면서 거듭났다. 어린 학생들의 연주실력이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처음 별량현악합주단원 구성원을 중심으로 다문화, 한부모, 조손, 다자녀 가정 출신의 불우한 청소년이 주를 이루며 규모가 확대됐다.
‘삶의 무게를 너무 일찍 느껴버린 아이들, 세상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다며 방황하던 어린이, 어둡고 마음의 문을 닫고 반항적이었던 청춘들’ 이렇듯 세상에서 소외받아 이방인이라고 느낄 즈음에 이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 이가 바로 마윤미(35) 순천 청소년현악오케스트라 단장이다.
마 단장은 오케스트라 단원의 어려운 가정 환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아이들이 예민한 사춘기인데다 불우한 생활상을 들추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을 것이란 그들의 속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시내 신대와 왕조지구의 이른바 '잘나가는 지역'에 사는 자녀 몇 명이 최근 단원에 합류함에 따라 구성원 모두가 어려운 가정 형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 단장은 "55명의 어린 학생 모두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한다. 탈퇴한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근래들어 참여를 문의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져서 곤란한 지경이다"라고 말한다.
바이올린 지도에 합류한 문예은 강사도 "어린 학생들을 지도해 왔지만 이렇게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을 본적이 없다. ‘별량애들이 천재같다’는 얘기를 강사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라고 말을 보탠다.
시골 교회목사의 딸인 마 단장은 중학생 때부터 희귀병으로 15년 정도를 사선을 넘나들며 무진 고생을 했던 아픔을 겪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재학 중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희귀병마와의 사투를 벌인 마 단장. 병마와 싸움에서 완치의 서광이 비치면서 자신이 전공한 바이올린 재능기부에 나선 것이 오늘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된 계기가 됐다.
별다른 지원체계가 없었기에 시작단계에선 마 단장 혼자서 각기 다른 현악기를 가르쳤다. 아이들의 음악사랑과 마 단장의 열정이 엮어져 6개월 후인 2018년 9월 순천팔마음악콩쿠르에서 합주부문과 앙상블 부분에서 차상의 결실을 얻었다. 2019년에는 ‘찾아가는 음악회 연주’를 수 차례 가졌고 정기연주회까지 가졌다.
2020년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연주 기회가 많이 줄었지만 전국생활문화축제 폐막식에 유일한 청소년 단체로 참가했고 10월24일 전국음악콩쿠르에서 합주부문 1위와 앙상블 부분 2위를 차지하며 전남도지사 상을 받는 등 연주실력을 인정받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개인적으로도 2020년 전남 숨은인재발굴대회에 정슬아(별량중3, 비올라) 단원이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00인에 선정됐다. 2021년 전남 으뜸인재발굴대회에서 박예원(남산중3, 첼로) 단원이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89인에 선정되는 성과도 올렸다.
이달엔 콩쿨에 참가하게 되고 8월엔 순천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제3회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개최, 12월에는 전남음악콩쿨 대상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같은 외형적인 성장 이면에는 고민거리도 적지 않다. 필요경비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창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마 단장이 오케스트라단을 운영하면서 드는 비용을 개인적으로 감당해왔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느라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던 터라 누구에게도 손을 벌릴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전남도내 일원과 광주까지 연주팀 지도나 개인 레슨을 통해 연간 3000만원 가량의 비용을 마련해 왔다.
2020년 처음으로 공모사업을 통해 다소의 자금을 지원받아서 지도강사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오케스트라에 대한 소문을 타고 입단을 요청하는 학부모가 늘어가고 있는데다 악기 구입과 수시로 있는 악기수리와 교체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간식비와 활과 줄 등 소모품비 등 사소한 것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무거워진다고 한다.
특히 내년도 창의예술고와 예술중에 입학을 목표로 실력을 연마하고 있는 학생이 5명에 이른다. 몇몇 후배들도 음악전공을 원하고 있다. 아이들의 연주실력이 향상되면서 지도방법도 차원이 달라져야 하고 이에 따른 경비도 증가하고 있다.
연습장소가 마땅치 않는 것도 문제다. 우선은 마 단장의 아버지가 목회를 하는 별량중앙교회를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와의 관계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올해 하반기부터는 별량초 강당을 연습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여수와 순천시에서 운영하던 30명~50명 단원 오케스트라 운영에 최소 1억에서 5억원의 예산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 운영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다 해도 줄 잡아도 6000만원의 예산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독지가 또는 소액 기부자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때마침 전남도에서 지정하는 전문예술단체로 선정됐기에 순천시와 순천문화재단을 통해 지정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그렇다고 외부 지원의 손길만을 마냥 기다릴 수 없기에 창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온 가족이 도우미를 자청하고 있다. 마 단장의 어머니 심현자씨는 간식과 차량봉사를 담당하고 있고 아버지 마성철 목사는 연습장소 자리배치와 정리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의 운영상의 어려움과 교육적 효과를 전해 듣고 상당액의 기부금을 낸 서모씨(60)는 "사회안전망으로 청소년오케스트라처럼 훌륭한 단체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단체에 관이나 민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게 최선의 복지정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순천청소년오케스트라에서 더블베이스를 맡고 있는 김랑(별량중3)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연주에 참여하고 있는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하고 "악기 연주를 전공으로 택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희망을 얘기했다.
"입단 초기인 1학년때 바이올린을 켰는데 첼로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어서 도중에 첼로로 바꿨다"고 말하는 박예원(남산중3) 학생은 "학교내에서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있는 4명이 합주를 할 기회를 가지면서 학교스타가 됐고 세월호, 5.18연주회 등을 통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오케스트라 참여로 인한 변화된 자신에 대해 얘기했다.
'엘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빈민층 청소년 11명의 단원으로 출발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다. 마약과 폭력, 총기사고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제시해 세계 각국의 사회 개혁 프로그램으로 확산되고 있다.
음악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엘시스테마'는 세계적인 음악가인 LA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 등을 배출했다.
'엘시스테마'는 마 단장에게 먼 남의 나라 얘기일 수 있다. 마 단장의 미래 청사진에 '엘시스테마'가 어렴풋이 어른 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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