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인 탓 업무마비·업무과다 피로도 한계치…인력보강 절실
[더팩트ㅣ부산=조탁만 기자] 2020년 경자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코로나19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의료진들도 1년 내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부산시 안병선(55) 시민방역추진단장, 이정민(42) 감염병대응팀장과 조봉수(56) 해운대구 보건소장, 부산의료원 간호사 등 4명을 만났다.
-코로나19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안병선 : 코로나19의 유행 초기에는 동선이 공개된 업소에서의 항의가 많았다면,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에 따른 집합금지 업종에서의 항의로 부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욕지거리부터 하거나 1시간 동안 질책을 하는데 딱히 답이 없는 사안이다보니 감당할 수가 없어 맥이 풀리는 경우도 허다하구요.
딱히 어디 하소연을 할만한 창구가 없다보니 코로나19 전담부서에 전화를 해서 쌓인 울분을 쏟아놓는 것도 일부 이해는 됩니다만 환자관리와 역학조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런 항의성 민원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서 힘드는 게 사실입니다. 전화하시는 분도, 우리도 모두 힘든 상황입니다.
(악성 민원인들로 인한 고충은 부산시뿐 아니라며 해운대보건소 관계자도 거들었다.)
조봉수 : 일부 주민들의 ‘갑질’ 때문에 힘들 때가 있어요. 초기에 자신이 관여된 사례가 발생하면 방역담당 공무원들에게 거주지 공개를 요구하는 민원전화가 생각보다 많았을 때였죠. 한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거주한 사실이 노출되면 "몇 동, 몇 호인지 알려달라"는 전화만 하루에 수십통씩 걸려오곤 했어요. 당연히 업무를 하지 못할 정도였구요.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알려줄 수 없다고 했음에도 몇 시간씩 거친 말을 이어가는 민원인들 탓에 속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자가 격리 대상자 통보 과정에서 "증거를 대라"며 윽박지르거나 심한 욕설을 뱉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어요.
(그는 할말이 많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방역을 직접 담당하는 직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요. 오랜 기간 근무한 직원들은 순환근무를 시켜야 하는데, 근무기간이 짧을수록 숙련도가 떨어져서 업무의 효율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여러가지 사정상 방역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직원이 마땅치 않습니다.
의료인이라 해도 방역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두려운 일인데다, 스스로 가족들에게 감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직원들을 동원하고 배치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개월가량 밤잠을 못자고 있는 직원들의 피로도를 생각하면 그냥 방치할 수만도 없는 상황까지 와버린거죠.
- 모든 게 힘들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기억이 있다면.
안병선 : 확진자의 치료병상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지만 자가격리자의 응급치료를 해줄 의료기관을 찾는 일이 가장 힘들죠. 자가격리자만 6000여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골절 환자, 혈액투석 환자, 응급수술 환자, 임산부 등 다양한 질환을 가진 분들이고요.
환자를 진료하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 병원 자체가 폐쇄될 위험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료를 해주는 병원만 있다면 구급차로 인근 시‧도까지 후송을 하는 일도 발생하곤 합니다.
조봉수 : 해운대 한 목욕탕에서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은 당시였죠. 앞이 캄캄했어요. 직원이 근무한 시간 중 이용자수를 확인해 보니 1500명이 넘더라구요. 심지어 목욕탕 안에는 CCTV가 없어 정확한 접촉여부조차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단시간에 검사해서 자가격리자를 찾아야 하는데, 전 직원들을 동원해 만 하루만에 결국 검사를 끝낸 적이 있어요. 검사과정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직원들이 힘을 모아 대처해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기때문에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요.
아찔한 순간도 있었죠. 신규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방역대응반을 꾸리고 보건소의 회의실 하나를 개조해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이들이 선별진료소 운영을 하던 중 고열이 나는 직원들이 발생했죠. 확진자와의 접촉이 늘 있는 업무를 맡고 있었던 이들이기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담당과장이 조사하니 8명 모두에서 고열이 있거나 다른 감기 증상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방역 컨트롤타워인 보건소에서 집단감염이 생겼다는 건 치명적인 일이라 내심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죠. 다행히 이들 검사결과는 음성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쉬지도 못하고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니 집단으로 감기몸살에 걸렸던 것이었죠.
음압병동 수간호사 A씨 : 치매환자가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을 보고 간혹 폭력성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특히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갑자기 꼬집거나, 수액폴대를 잡고 난동을 부리면 미처 피하지 못해 맞는 경우도 허다해요. 아픔을 감수하는 것보다 보호복이 찢겨 감염에 노출되는 게 더 염려되곤 해요.
환자들에게 택배가 많이 오는데, 이 택배도 감염관리를 위해 모두 선별해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예요. 이 뿐만 아니라 원치 않은 택배가 오면 반품 처리도 해야 해 난감할 따름이죠. 커피 심부름을 시키거나 자신을 무시한다며 욕설을 하는 환자도 더러 있구요.
또 은행 업무를 대신 봐달라고 하거나 심지어 은행 업무를 보지 못해 사업상 손해를 봤다며 간호사에게 책임을 지라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엔 누굴 탓해야 할까요.(한숨)
- 말만 들어도 고된 업무의 연속이네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시나요.
안병선 : 너무 바쁘니 그런 것을 생각하지도 못해요. 스트레스가 쌓이는 걸 느끼는 게 사치일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매일 매일 상황을 해결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해요.
조봉수 : 당장은 업무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게 전부입니다. 육체적으로 지치지 않으려고 특별한 사건이 없는 날에는 일찍 수면을 취하는 건 기본이고요.
이정민 : 뭐, 잠을 자는 게 다죠. 코로나19 사태로 외부 활동을 할 수 없는 탓에 가정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게 그나마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죠.
음압병동 수간호사 A씨 : 부산의료원 전 직원은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감염예방 최고 수준인 3단계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병원과 집 외에는 외출을 삼가하고 있어요. 집에서 쉬면서 피로를 푸는 것 외에는 별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습니다.
- 업무 과로와 관련해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안병선 : 지난 9월 조직이 확대됐지만 환자가 증가하고, 시민들의 요구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업무는 더 많이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21년 1월부터 인력이 증원되면 업무를 효율적으로 분담할 계획입니다. 시청 내 다른 부서원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활성화해 직원들의 부담을 줄일 계획입니다.
(부산시뿐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최전방에서 방어벽을 치고 있는 다른 기관 관계자들 모두 '인력 보강'이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봉수 : 내부적으로 직원들의 업무과로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순환배치, 동원근무 등을 취하고 있지만 인력 부족이라는 꼬리표 뒤엔 직원들의 피로감이 항상 뒤따르고 있습니다.
코로나 여파가 장기화되면 구청 내 타 부서에서도 인력 지원을 받을 계획도 있어요. 그럼에도 의료 인력은 한정되어 있어 기간제 등 임시로 근무할 수 있는 직원들을 많이 확보한 뒤 일을 분담하는 게 필요하죠. 가장 일을 잘할 사람이 쓰러지면 다음 대응은 일을 모르는 사람이 맡아서 해야 하고, 대책에 누수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정민 : 두말 하면 잔소리입니다. 인력 보강이 절실하게 필요할 뿐이죠.
음압병동 수간호사 A씨 : 인력 지원이 절실하고, 현장에서 쌓여만 가는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한 휴게공간 확보도 중요합니다.
-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안병선 : 코로나19와 같이 전염병은 나 때문에 모두가 위험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을 거에요. 나 홀로 고립해서 생활하지 않는 이상은 모두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그만큼 위험한 질환이라는 말이죠.
최근 무증상 감염자로부터 시작된 감염이 지인으로, 가정으로, 고위험집단시설인 요양병원까지 연결되는 감염 양상을 띠고 있어요. 가벼운 질환이라 쉽게 생각한 젊은이들의 방심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모두의 안녕을 위해 서로가 약속한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것만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봉수 : 개인방역이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음압병동 수간호사 A씨 : 시민 모두가 희생을 감당하면서도 의료진을 응원해주신 점은 매우 감사드려요.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위해 마스크 착용 및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켜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도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기에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도 부탁드릴게요. 언젠가는 끝이 날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저희 간호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정민 : 감염 자체는 거의 직접 접촉에 의해 일어나는데요. 물론 문고리나 손잡이 등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 수칙을 지킨다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는 말이죠. 가족 간의 감염은 사실 피하기 어렵지만 타인으로부터 감염은 방역수칙만 잘 지킨다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조심한다고 해도 확진자가 될 수 있기에 확진자에 대한 비방이나 정죄를 하지 말아야 할 거구요. 확진자를 배려하고 응원하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합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내년 3월 백신이 나온다고 하네요. 앞으로 100일 동안 모두가 함께 코로나에 대응한다는 마음으로 방역수칙 잘 지켜주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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