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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재의 왜들 그러세요?] 전두환 집행유예, ‘역사 법정’은 결국 해체되는가

  • 전국 | 2020-12-04 08:56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더팩트 DB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더팩트 DB

고 김영삼 대통령의 1997년 전‧노 특별사면, 거듭 뼈아프게 돌이켜져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자신의 회고록에서 성직자인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에 비유한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형사재판이 3년 7개월여 만에 결론이 났다. 11월 30일 오후 1심 재판부는 전두환 피고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정구속을 기대했던 광주시민들은 퇴정해 법원을 나서는 전씨에게 달걀 세례를 퍼부으며 반발했지만, 역사 앞에서 이미 부끄러운 죄인이 된 그에게 구속과 집행유예 사이의 간극이 사실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양형의 무겁고 가벼움이 의미를 지니려면 피고인 심경의 변화에 끼치는 중압감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씨에게서 전혀 그러한 일말의 기색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재판정에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만도 아니다. 내란죄로 사형을 받고도 그는 풀려났다. 공권력이 부과한 거액의 벌금도 그는 ‘돈이 없다’며 거부했다. 자신이 헌정질서를 유린한 불법으로 정권을 강탈했듯이, 전씨는 이 나라의 모든 법질서를 전직 대통령을 지냈다는 터무니없는 배짱으로 발아래 깔아뭉갰다.

그렇다면 그의 배짱을 떠받치는 기병지는 어디일까.

전두환의 행적에 부정적인 의견을 인용하는 기사가 노출되면 지금도 여전히 태극기 부대나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야유성 댓글이 게재되는 게 여론의 현주소다. 때로는 전씨를 가장 맹렬하게 비난하는 일부 지역민들을 향해 ‘홍어 떼’ 따위의 모욕적인 댓글을 퍼붓기도 한다.

이들의 댓글 모욕은 고통과 폭력을 안기며 만족감을 즐기는 사디즘처럼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가학적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 또한 광주시민들의 입장에선 어제 오늘 겪은 일만은 아니다.

헬기 기총소사까지 동원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입 밖에 내지 못한 세월이 십수년이었고, 그날 죽은 자들의 묘지를 찾는 발길조차 금했던 세월 또한 십수년이었다. 그날의 희생자들이 국립묘지에 옮겨졌고, 80년 5.18은 국가기념일이 됐지만 군부독재정권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정권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광주가 사랑하는 5월 투쟁가조차 금지했다.

그렇게 40년이 흐른 오늘. 전 씨를 현행법으로 단죄하지 못한 채 5.18학살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조차 ‘지겹고 짜증스런 일’로 매도하는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광주시민들은 1997년 12월 22일을 뼈아프게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날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대화합을 명분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특별사면했다. 내란수괴죄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두 사람은 구속 2년여 만에 출옥했다. 민주주의를 요구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그들의 죄업은 그렇게 역사법정을 벗어났다.

그날 이후 40여 년 동안 가해자들은 단 한 차례도 반성의 언급이 없었고, 광주는 정치적 망각을 강요당했다. 광주학살의 가해자들이 역사법정을 벗어난 1997년과 2020년 광주법정의 전씨 집행유예 선고 사이의 역사의 시간차는 사실상 제로(0)라면 지나친 자책일까?

광주는 많은 일을 했으며, 또한 광주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역설을 아프게 되새기다 보니 전씨 유죄를 선고한 광주지법 김정훈 재판장의 선고문 한 구절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한마디만 보탠다. 지금이라도 5.18이 판결 선고를 계기로라도 과거를 돌이켜보고 진심으로 사죄, 용서받고 불행한 역사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더팩트 DB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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