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 안오니 마을 골목골목이 쥐죽은 듯 조용하지만, 마음만은 더 가깝게"
[더팩트ㅣ창원=강보금 기자] "아이고~우리 호야네! 잘있드나. 그래그래 할미는 잘 있다. 직장은 잘 댕기고? 코로나 조심해래이~ 항시 마스크 잘 쓰고 댕기고~ 고마 이번 추석에 못내려 온다꼬 걱정하지 말고 안 와도 된다카이… 매년 오는 추석인데 뭐시... 상황 좋아지면 그때 오거라."
작은 스마트폰의 창 너머로 그립던 손주를 만난 반가움에 경남 밀양시에 사는 임복숙(81)씨는 새삼 현대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을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자꾸만 눈길이 대문 쪽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이라도 자식과 손주들이 문을 열고 밝은 음성으로 '어머니~, 할머니~'라고 부르며 왁자지껄하게 들어올 것만 같다.
매년 추석쯤이면 현관이 여러 크기의 신발로 가득 차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가족이 모였었는데, 올해는 휑하기 그지없다. 현관엔 작년 자식 내외가 사준 기능성 효자신발(운동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임 씨는 "올해 추석엔 자식, 손주들이 못와도 서운함이나 원망같은 거 일절 없다. 그저 내 새끼들이 걱정될 뿐이다"면서도 "그렇지만 일년에 고작 한 두 번 만날 수 있는 명절에 자식, 손주들과 함께하지 못해 마음이 썰렁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을바람이 쌀쌀해진 탓에 가슴이 더 시린 것인지도 모른다"며 미소 짓는 주름 사이로 아쉬움이 잔뜩 배어난다.
임씨는 올해 추석 밥상이 매우 썰렁할 것 같다고 짐작한다. 그 흔한 추석 음식인 민어구이나 송편, 갖가지 전들도 없이 평소 먹던 나물 반찬에 김치 몇 조각 등을 손수 차려 먹을 듯싶다.
임씨는 "올해 추석에는 가족들의 얼굴 대신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지난 추석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래려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노인정도 못다니고 이웃들과의 왕래도 뜸해져 더 고독한 명절이 될 것 같다"며 "이맘때 쯤이면 마을 골목골목에 어린아이들 노는 소리로 조용했던 마을에 활기가 넘쳤는데, 올해는 쥐죽은 듯이 조용하니...원..."이라며 말 끝을 흐렸다.
임복숙씨의 손자 정유호(31)씨는 할머니와의 영상통화로 이번 추석 인사를 대신한 후 "영상통화로나마 할머니 모습을 뵐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아쉬움이 더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매년 풍족하고 시끌벅적했던 추석이 이번엔 가족 없이 보낼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거리두기이지만 마음만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을 간절히 느낄 수 있는 추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결혼한 문지영(28)씨는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인데 시댁도 친정도 못가는 상황이 생겨 난감하다. 새롭게 가족을 만들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제대로 인사도 못해 시댁 가족 중에는 아직 새댁 얼굴도 잘 모르는 분들도 더러 있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의 의미가 더욱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가족과 나의 배우자가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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