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이동호 현대백화점그룹 전 부회장이 자신의 삶을 솔직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 '긴 여정의 첫걸음(바른북스)'을 출간했다.
저자 이동호는 현대백화점그룹에서 36년간 근무하며 그룹의 전략적 M&A와 신사업을 총괄하고, 조직문화 혁신을 이끌었다. 지난 2017년엔 부회장으로 승진해 그룹 경영 전반을 두루 챙겼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자연인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의 추억을 소박하게 글로 엮어낸 책이다. 가족, 이웃, 친구, 동료 등 그의 곁을 함께 한 이들과 삶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이 녹아 있다. 거창한 처세술이나 경영 비법, 성공 신화 대신 진솔하고 내밀한 지난날의 성찰과 고백으로 독자에게 부담 없이 다가간다.
많은 경영인들이 회고록에서 인생사를 부풀리거나 성공 신화의 치적을 남기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저자가 이뤄놓은 성과는 후배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책속에는 개인으로서의 실수와 약점, 실패를 있는 그대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오직 겸손과 반성,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저자의 소탈함이 책 전체에 깊게 깔려 있다. 책의 구절들 곳곳에는 저자의 맑은 영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19금 영화를 몰래 보았다가 실컷 매질을 당했던 사춘기 소년,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군대에 가기 싫어했던 청년, 음치라는 한계에 주눅 들었던 직장인의 민낯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툭 터놓았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동료, 친구와 이웃, 다양한 인연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웃음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60리 영산포 장터길을 걷던 소년이 어느새 인생의 여정을 지나며 '우리네 삶이 언제나 고음처럼 찬란할 수만은 없다는 것, 때로는 한 소절쯤 조용히 넘어가도 괜찮다'는 다독임을 건넨다. 이는 소박하지만 든든한 위로가 되어준다.
특히 '반백년의 동행' 편은 에세이라는 소박한 형식을 빌려 썼지만, 사실은 반평생을 묵묵히 함께 걸어와 준 아내에게 바치는 세상에서 가장 절절하고 따뜻한 연애편지다.
저자는 또한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처럼 마음의 평온을 잃는 인생의 마지막 시련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조그만 욕심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찌그러진 냄비에 남겨진 라면 국물이 아직 따스할 때 찬밥을 말아먹고 싶은 마무리 국면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너무나 평범하지만 깊은 깨달음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생은 충만한 것이고 누구에게나 빛나는 순간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인생이 왜 아름다운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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