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소극적 법리 적용에 처벌 불원 의존 지적

[더팩트ㅣ김영봉·안디모데 기자] #1. 경찰은 지난해 3월과 5월, 7월 세 차례 스토킹 신고를 받고 60대 남성 A 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경찰은 긴급응급조치에 이어 100m 이내 접근과 전화·문자 등 연락을 금지하는 잠정조치 2·3호를 신청했지만, 검사는 청구하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내고 여성을 찾아간 사정만으로 스토킹을 지속, 반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A 씨는 결국 전 연인을 흉기로 살해했다.
#2. 30대 남성 B 씨는 전 연인에게 전화를 168회 걸고, 문자를 400통 보내는 등 스토킹했다. 경찰은 구치소에 가두는 잠정조치 4호를 신청했지만 검사는 청구하지 않았다. B 씨가 여성에게 매달리는 상황이라는 점, 여성도 유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지난해 7월 접근·연락 금지만 결정된 상태에서 B 씨는 전 연인의 직장을 찾아가 흉기로 수십 차례 찔렀다.
관계성범죄 가해자를 격리하기 위한 구속영장 신청, 구치소 유치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 잠정조치 신청 중 상당수가 기각 또는 반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범죄의 경우 재범 위험이 큰데도 공소청이나 법원의 소극적 판단으로 피해자가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6일 경찰청에 따르면 관계성범죄 전수점검 기간이었던 지난달 19~30일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376건 중 113건은 법원이 기각했고 114건은 검사가 청구하지 않았다. 총 227건이 기각·불청구돼 전체의 60.4%를 차지했다. 149건은 심의·보완 중이다.
신청한 영장 376건 중 80건이 발부됐다. 발부율은 21.3%다.
유치 신청은 506건 중 116건이 받아들여져 결정률 23%, 전자장치 부착 신청은 321건 중 104건이 받아들여져 결정률 32.4%에 그쳤다.
유치 506건 중 법원 기각은 183건, 검사 불청구는 120건이었다. 전자장치 부착 321건 중 법원 기각은 98건, 검사 불청구는 67건이었다. 기각·불청구 비율은 유치 59.9%, 전자장치 부착 51.4%로 모두 절반을 넘었다.
기각되거나 불청구된 구속영장 227건 중 145건은 잠정·임시조치를 병행 신청한 경우였다. 경찰은 가해자를 격리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함께 신청하지만, 유치나 전자장치 부착 결정을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관계성범죄의 특성과 재범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법리를 소극적으로 적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재범 위험이 높아 가해자 격리를 위한 구속영장을 신청해도 주거가 일정하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 사유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사례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이후에도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에 의존하는 판단이 이어진다는 목소리도 있다. 스토킹범죄는 지난 2023년 7월부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 처벌 불원 의사를 사건 종결이나 소극적 보호조치의 근거로 삼으면 법 개정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경찰은 경기 시흥시에서 여성의 주거지에 찾아가고 주변을 배회한 남성의 잠정조치와 구속영장을 병행 신청했으나 공소청에서 모두 반려됐다. 상대방이 명시적으로 연락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등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스토킹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격리 및 보호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사법기관의 스토킹범죄 재교육이 필요하다"며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에 매몰되기보다 의무적 체포·기소 제도를 도입하고 가해자 격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시설을 확대하고 전자발찌 모니터링과 즉시 출동할 수 있는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며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도 "관계성범죄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 처벌을 원한다고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처벌 불원 의사만 볼 게 아니라 현장에 출동해 피해자를 만난 경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kyb@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