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중립성 입증 부담…수사 관할 혼선도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출범을 상징할 '1호 사건'을 두고 신중한 모습이다. 권력형 비리나 대형경제범죄 등 전문 수사기관으로서 역량을 입증할 사건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사건별 수사 개시 판단이 엇갈리면서 이른바 '사건 쇼핑' 우려도 나온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수청은 지난달 2일 출범 이후 마약 밀수와 대마 재배, 해외 '노쇼 사기' 사건에서 피의자 6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이들 사건을 '1호 수사'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단순한 구속 실적보다 경찰과 차별화된 중대범죄 수사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판단이 깔렸다. 중수청 관계자는 "중수청만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가진 사건이면서, 중수청만이 전문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 수사 대상이 기관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2021년 5월 조희연 당시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을 '1호 수사'로 삼았다가 설립 취지와 달리 이른바 '만만한 사건'을 골랐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사원 감사로 대부분 드러난 의혹이라 부담이 큰 사건을 일부러 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수사 여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점도 대형 사건 수사에 신중한 배경으로 꼽힌다. 중수청은 정원 2874명의 66.1%인 약 1900명으로 출범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은 사건 이첩과 접수·배당 등 일부 기능만 가동 중이다. 수사기록 작성과 송부도 문서를 출력해 처리하는 등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중수청이 어떤 기준으로 직접 수사할 사건을 선별하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경찰이 중수청에 인지통보한 사건은 2002건에 달했지만, 중수청이 이첩을 요구한 사건은 단 1건에 그쳤다.
특히 금융권 연쇄 해킹 사건은 중수청이 직접 수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대표적 사례다. 국수본은 금융위원회에서 해킹 피해 시스템이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기반시설'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유권해석을 받아 지난달 21일 중수청에 사건을 통보했다.
그러나 서울중수청은 이틀 뒤 경찰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고 국제공조도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로 수사 불개시를 결정했다. 이를 두고 한 금융당국 출신 변호사는 "중수청이 이번 사건을 경찰에 소위 '핑퐁'을 친 것 자체가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얼마나 졸속으로 마련된 것인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고위공직자 관련 고발 사건에서도 수사 관할을 둘러싼 혼선이 우려된다.
서울중수청 반부패수사국에는 한동훈 무소속 의원 딸의 '허위 스펙' 의혹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 허위 기재 의혹 사건 등이 배당됐다. 한 의원의 딸 관련 수사 무마 의혹은 경찰이 수사 중이다. 경찰이 지난달 27일부터 나흘 연속 고소·고발인을 조사한 반면 중수청은 사건 배당 3주가 지나도록 기록 검토 중이다.
반면 서울중수청은 '소방 재정 빨대' 발언으로 고발된 추미애 경기도지사 사건을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이첩했다. 직권남용·업무방해·명예훼손 등 혐의 중 명예훼손을 주된 혐의로 판단해 직접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개정법으로 권한을 다 쪼개놓은 게 문제"라며 "하나의 사실관계에서 나온 혐의를 기관별로 나눠 수사하면 중복 수사와 책임 회피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정권에 따라 사건을 취사선택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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