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태연 기자] 한 임산부가 경찰에서 심야조사를 받은 후 유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신체의 자유 침해로 판단, 관행적 심야조사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16일 인권위에 따르면 임산부 A 씨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서울경찰청에서 총 세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A 씨는 조사를 받은 다음 날 유산했고, "수사관이 임산부의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심야조사를 강행해 유산에 영향을 미쳤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담당 수사관은 "조사량이 방대해 심야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전에 알렸고 A 씨가 동의해 심야조사 요청서를 제출했으므로 강제성이 없었다"며 "피의자가 요청서를 제출하면 구체적인 사유를 따지지 않고 심야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경찰이 받은 심야조사 요청서는 A 씨가 먼저 적극적으로 요청한 경우가 아닌 수사기관의 조사 진행 필요에 따라 동의를 받은 성격이 강하다"며 "수사관의 요청에 따른 피의자의 형식적 동의는 강압수사 관행을 근절하고 인권침해를 방지하려는 수사준칙의 취지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에 따르면 심야조사는 출국이나 입원, 원거리 거주 등 재출석이 곤란한 구체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인권위는 "수사관이 A 씨의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를 심야·장시간 조사 허용 여부의 고려 요소로 삼아 조사 일정을 분리하는 등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며 "A 씨 유산과 심야조사 사이의 의학적 인과관계는 판단할 수 없지만 임신 사실을 알면서 보호조치를 소홀히 한 행위는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심야조사가 관행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심야조사 요청서에 재출석이 곤란한 구체적 사유를 기재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심야조사와 장시간 조사 허용 사유 판단에 있어 피의자 또는 사건 관계인이 임신, 중증질환, 고령, 장애 등 육체적·정신적 건강상태를 수사관에게 고지할 경우 이를 필수적으로 기록하라고도 했다.
pad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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